[진현우의 여의도노트] '韓, OECD 근로시간 5위'...근본적 개편 가능할까
[진현우의 여의도노트] '韓, OECD 근로시간 5위'...근본적 개편 가능할까
  • 진현우 기자
  • 승인 2023.04.0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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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효율·워라밸 최우선시'... MZ세대 중심 '주4.5일제' 여론몰이 활발
국민여론 근로시간 개편 "필요없다" 52%"...찬성자 중 61%만 "시간 확대·유연화" 긍정적
與野 모두 여론 추이 지켜보면서 근로시간 개편 추진할 듯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연합뉴스)

'1915시간'. 지난 2021년 OECD가 조사한 한국의 근로시간이다. 전체 OECD회원국 중 '근로시간이 가장 긴 국가' 5위를 기록했다. 

최근 'MZ세대(20~30대)' 사이에서 주 4.5일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코로나19 확산때 재택근무 경험으로 얻은 고효율 근무와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MZ세대 성향이 '주 4.5일제'를 시대적 화두로 끌어낸 것이다. 이에 발맞춰 정치권에서도 주 4.5일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과연 주 4.5일제는 글로벌 저성장과 장기적인 경제침체에 처한 지금의 상황에서 실현가능한 대안일까? 이 정책을 실효성있게 추진하기 위해선 어떤 선행조건이 필요할까? 주4.5일제를 바라보는 정치권, 재계, 노동계, 국민들의 입장과 견해도 다소 엇갈리고 있기도 하다.

주 4.5일제에 찬성하는 이들은 효율성 높은 노동을 통한 생산성 강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와 건강권 보장을 주된 찬성 이유로 꼽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토론회 등에서 주 4.5일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선명성을 부각하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주 4.5일제 도입 관련 토론회에서 "노동, 산업 환경들을 고효율의 노동으로 대체해가는 미래를 만들어나가겠다"며 점진적인 주 4일제 도입 검토를 제안했다. 근무 시간을 축소하는 대신 노동 효율을 올려 생산성 측면에선 무리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주 4.5일제와 관련한 입법 논의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민주당 이수진 의원(비례)이 지난 3월 국회에 제출한 '과로사 예방 및 근로시간 단축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는 "법정근로시간 단축 등 과로사 예방을 위한 국가와 지자체 차원의 효율적인 대책 마련 및 추진"이 주요 골자로 담겨 있다. 이 의원은 "노동 현장에 주 4.5일제를 연착륙하기 위한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이재명 대표가 29일 주 4.5일제 도입 관련 긴급 토론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표가 29일 주 4.5일제 도입 관련 긴급 토론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일이 많을 때는 주 최대 69시간까지 집중적으로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푹 쉴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으로 요약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내놓았다. 노동부는 일하는 전체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며 근로 시간을 선택해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쉴 수 있는 문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부정적 여론이 급속히 확산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보완을 지시했다.

양대 노총은 ‘장시간 근로’ 논란을 부른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과 관련해 공개 토론을 하자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안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은 지난달 30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개편안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뒤 청년들과 여러 차례 면담했지만, 이 역시도 선별적 비공개 면담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사용자 단체에서는 경제 위기 속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고, 경제 활성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어렵다며 주 4.5일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지난달 31일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은 "국민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여론을 더욱 폭넓고 충분하게 수렴하겠다"고 새롭게 입장을 밝혔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간담회 브리핑에서 "노동자들이 불안해하고 의심하지 않는 근로시간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오늘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근로자들이 의심하고 불안해하면 그것은 착한 제도가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MZ(밀레니얼+Z세대) 세대는 물론 현장의 중소기업, 중장년 근로자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필요하면 여론수렴을 더 하는 기회를 갖겠다"고 했다.

근로시간제도 개편 관련 당·정·대 조찬간담회가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 임이자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간사,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관섭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근로시간제도 개편 관련 당·정·대 조찬간담회가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 임이자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간사,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관섭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부 국민여론과 전문가들은 '주4.5일제 근무제'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적 시각도 내놓고 있다. 우여곡절 속에 탄생시킨 '주52시간제'가 안착할 겨를도 없이 섣부르게 '주69시간제', '주4.5일제' 등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는 실효성없는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현행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3월27~29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41%,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52%였다.

주 52시간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바람직한 개편 방향'을 조사한 결과 '최대 근로시간 범위 확대 및 유연 운영' 61%, '최대 근로시간 제한 또는 축소' 36%였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 참조)

이처럼 민주당이 제시한 '주 4.5일제'을 도입할 수 있을지, 정부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장기 휴가를 전제로 한 근로시간 늘리기'가 가능할지, 근로시간 개편 성공 여부는 국민 여론에 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MZ세대가 시대에 대해 많이 허탈해 하고 있고 희망을 찾지 못하는 시대에서 이들의 선택이 결국 우리나라 노동시장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며 "여야 모두 MZ세대의 관심과 지지를 받기 위해 총력전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hwji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