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항공사 비정규직 "주인공은 나야 나"
[기자수첩] 공항공사 비정규직 "주인공은 나야 나"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7.09.0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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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설과 영화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심지어 주인공은 총·칼을 맞아도 비행기가 추락해도 끝까지 살아남는다. 주인공의 죽음 혹은 스토리에서의 배제는 곧 소설과 영화가 끝났음을 알린다.

문재인 정부 최대 과제 중 하나인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당연히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다. 그러나 일부 공공기관에선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을 배제시키는 이상한 스토리 전개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수익창출을 가장 큰 목적으로 삼고 있는 민간기업에서 비정규직들이 불안한 고용과 부당한 대우, 저임금으로 고통을 호소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와 비교해 공익을 가장 우선시 하는 공공기관의 상황은 좀 다를 것이란게 우리 사회의 일반적 시각이었다.

지난해 이 같은 통념을 완전히 깨고 공공기관도 사기업 못지 않은 열악한 근로조건을 비정규직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기관이 있다. 바로 한국공항공사다.

공항공사가 계약한 외주업체를 통해 김포공항에서 일하는 미화원들은 몇 년을 일해도 오르지 않는 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에 고통받고 있었다. 마땅히 쉴 곳 조차 없어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간식을 먹어야 했다는 뒷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군대 말단 병사때 선임 몰래 화장실에서 초코파이와 건빵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는 남자들의 무용담을 듣는 듯 했다.

이 같은 설움을 겪었고 지금도 별반 달라진게 없다고 주장하는 공항공사 비정규직들은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선언에도 웃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 계획 수립의 과정에 비정규직들의 의견을 전하고 싶지만, 공사측에서 대화의 통로를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공항공사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공항공사가 나름 대화의 형식을 만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정규직들 입장에서 이는 말 그대로 '형식'이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성일환 공항공사 사장 등 국토부 산하 14개 공공기관장들과 함께한 간담회를 통해 "노사 및 전문가와 적극적으로 협의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말했다.

장관의 이 같은 당부가 있던 날 공항공사는 즉각 정규직 전환 방안 마련을 위한 노사협의체 구성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협의체가 얼마만큼 진정성 있게 운영되는지는 계속 지켜봐야할 문제다.

선심쓰듯 베푸는 애매모호한 호의가 때로는 받는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임금과 근로조건 보따리를 풀라는 말이 아니다. 계획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정규직들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듣고 가능하면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공공기관 정규직화의 주인공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연이나 단역 취급해선 정책이 성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문제를 푸는 핵심 열쇠는 언제나 주인공 곁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신아일보] 천동환 기자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