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학교폭력은 사회악이다
[기자수첩] 학교폭력은 사회악이다
  • 전호정 기자
  • 승인 2017.06.22 13: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마가 임대아파트 아이들이랑은 놀지 말랬어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과연 아이들이 이 말의 의미를 진정 파악하고 있을까 싶겠지만 생각보다 요즘의 아이들은 꽤 똑똑하다.

휴먼시아와 거지의 합성어인 '휴거'라는 말이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휴거는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뜻하는 말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유행처럼 번진 신조어라고 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습득력이 뛰어나고, 눈치도 빠르다. 또 어른들의 어두운 단면을 쉽게 답습할 수 있어 조기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유력 인사들 자녀가 연루된 학교 폭력을 학교 측이 무마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유독 가슴이 답답한 이유를 찾는다면 앞서 열거한 내용들과 같은 이유에서라고 말하고 싶다.

이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서울교육청은 지난 21일 이 학교에 대해 공식 감사에 착수했다.

앞서 실시한 현장점검에서 학교 측은 보고와 전담기구 조사를 미루고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을 격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피해 학생이 장기 결석을 하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다만 학교 측이 재벌 그룹 손자를 가해 학생 명단에서 빼줬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현장 점검에서 사실 관계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해 공식 감사를 통해 규명하기로 했다.

하지만 해당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학교 폭력이라고 하기 보다는 심한 장난에 가깝다”면서 ‘조치 없음’으로 이 사건을 종결했었다. 이 같은 학교 측의 대응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저 무엇보다 피해 학생을 배려하는 조치를 학교 측이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위법일뿐더러 피해 학생을 두 번 울리는 꼴이다.

또 학생들이 올바른 사고를 가질 수 있도록 학교 폭력에 대한 잘못된 점을 인지시켜줘야 하지만 오히려 ‘심한 장난’으로 사건을 축소시켰다는 것은 관련 학생들뿐만 아니라 비슷한 또래 학생들 모두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스럽다.

저학년을 제외한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휴대하며 이번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접했을 것이다.

이 아이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어른들의 조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판단을 갖게 될지 걱정이 앞서는 것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또 이번 사건의 한 단면에는 '수저 계급론'이 녹아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학교 폭력은 척결 또는 근절해야 할 범죄를 의미하는 ‘4대 사회악’에 포함될 정도로 위중한 문제다. 그 누구보다 당사자인 학생들이 학교 폭력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하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한 감사를 통해 사건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부모 뿐만 아니라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거울’과 같은 존재다. 교육계 종사자들은 특히나 이 사실을 그 어떤 순간에도 잊지 않길 바란다.

[신아일보] 전호정 기자 jhj@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