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한민국의 우울한 5월23일
[사설] 대한민국의 우울한 5월23일
  • 신아일보
  • 승인 2017.05.2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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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2017년5월23일이 우울한 하루로 기록될 것이다.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형사지법 417호 대법정에는 수인번호 ‘503’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고인으로 자리했고,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 마을 묘역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이 진행됐다.

박 전 대통령은 뇌물 등 18가지 혐의로 구속된 지 53일 만에 법의 심판을 받기 위해 섰고, 노 전 대통령은 8년 전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유명을 달리했다. 이유는 각기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은 권력 남용 및 뇌물 수수라는 죄명으로 탄핵에 이어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은 측근 비리 수사 과정에서 굴욕을 참을 수 없어 모든 것을 안고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전직 대통령이 피의자가 된 사례는 21년 전에도 있었다. 1996년 2월 26일 오전 10시 서울형사지법 417호 대법정에 연두색 수의를 입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들어섰다. 수인(囚人)번호 ‘3124’가 뚜렷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전직 대통령의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이어 14일 뒤인 3월 11일 12·12 및 5·18 사건의 첫 재판에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출정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는 ‘1042’였다. 국민은 다시는 이런 날이 없기를 바라며 두 전직 대통령을 지켜봤지만 이 기대는 박 전 대통령에 의해 무너졌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을 몰랐고 나는 한 푼도 사적으로 챙긴 게 없다”라는 기조에 변화가 없었다. 슬픈 일이다.

그 시간 우리나라의 동남쪽 봉하 마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 참석을 위해 9시부터 시민들의 차량이 줄을 이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를 맞는 친노(친 노무현) 진영의 소회는 어느 때보다 특별할 것이다. 지난 5·9 조기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친구인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서 숙원이었던 정권교체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친노 진영은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2012년 문 대통령을 앞세워 정권교체를 시도했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갖은 고충을 겪던 친노 진영은 지난해 총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김경수 의원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진 출신 12명이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재기했다.노 전 대통령은 8년 전 오늘 비록 죽음을 선택해 자신의 결벽을 주장했지만 우리 국민들에게는 슬픔을 안겨 줬다.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겠는가.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고 국민의 영웅으로 남아 있다.

이에 반해 박 전 대통령은 어떤가. 오늘도 국민에게 안타까움만 주었다. 한때는 국민들로부터 많은 갈채를 받았던 대통령이 포승줄로 묶여 법정에 섰다. 박 전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지난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국론 분열과 혼란이 지속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위한 길이다.

국가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일 것이다. 대통령은 이런 행위를 실해에 옮겨야 할 것이다. 앞으로 불행한 대한민국이 되지 않도록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민은 헌법적 가치를 지키고 훼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