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핑크카펫’을 비워두자
[기자수첩] ‘핑크카펫’을 비워두자
  • 박고은 기자
  • 승인 2017.04.2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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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는 너무 좋지만, 선뜻 자리 양보를 받아본 적은 없어요. 임산부 자리이니 비켜달라고 먼저 말을 꺼내기는 또 어렵구요.”

지하철 3호선을 자주 이용하는 임산부 문모(26·여)씨의 이야기다. 인터넷 이른바 ‘맘 카페’ 등에서는 문 씨와 같이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서울지하철공사는 재작년 7월 임산부 배려석인 ‘핑크카펫’을 만들었고, 서울시는 지난해 초 1~8호선 전체로 적용을 확대했다.

시행된 지 어느덧 1년 9개월이 돼가고 있지만 핑크카펫은 여전히 임산부와 일반 승객 모두에게 ‘불편한 존재’로 인식되며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출·퇴근 시간 임산부가 핑크카펫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란 어렵다. 학생, 중년 남성 등 임산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이용하고 있다.

심지어 임산부가 바로 옆에 버젓이 서 있는데도 휴대폰을 사용하면서 딴청을 부리며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임산부 뱃지를 눈에 잘 띄도록 달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임산부들은 만삭일 때는 무거운 몸이 힘들어서, 임신 초기일 때는 유산을 우려하며 핑크카펫의 필요성을 호소한다.

그러나 임산부석에 대한 제대로 된 이용법을 모르는 시민들은 대부분 “임산부석이면 꼭 무조건 비워놔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임산부가 근처에 왔을 때 비켜줘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핑크카펫은 ‘양보하는 자리’가 아니라 ‘비워두는 자리’이다. 소중한 생명을 품고 있는 임산부들에게 핑크카펫은 분명 필요한 자리이다.

시민의식의 변화로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교통약자인 임산부를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확대되길 기대해본다.

[신아일보] 박고은 기자 goeun_p@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