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순실의 시대’ 속 수능날
[기자수첩] ‘순실의 시대’ 속 수능날
  • 최문한 기자
  • 승인 2016.11.17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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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어순실’한 상황 속에서도 불철주야 노력해 온 60만5900여 명 수험생들의 결전의 날이 밝았다.

올해 수험생들은 유달리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인 학생들은 1학년때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대다. 아이들은 대부분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어른들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수능 시험을 얼마 남기지 않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격랑에 또 한 번 크게 휩쓸렸으니 마음을 다잡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지난 주말, 공부한다는 핑계로 명절 때도 좀처럼 만나기 힘든 아이들이 수능시험을 닷새 앞둔 이날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까.

정치권 또는 어른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학생들은 상실감과 허탈감, 무력감을 호소한다.

“아무리 노력한들 나는 결국 흙수저였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든다” “수능이 아니라 승마를 공부했어야 했다”는 등의 자조 섞인 반응은 인터넷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학생들을 가슴을 졸이며 다독이는 부모들과 교사들의 마음도 편치 않은 것은 매한가지다.

고3 수험생 딸을 둔 친구도 며칠 전 내게 “주말에 촛불집회라도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딸의 얘기에 가슴이 철렁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왔다.

이 친구는 “시험이 끝난 후 함께 나가겠노라 약속하고 딸을 말렸지만 옳은 일 한다는 아이를 내 이기심에 말린 것 같은 생각에 왠지 모를 착잡한 마음이 들더라”고 말했다.

오히려 지금의 사태를 나아가는 원동력으로 삼는 아이들도 있다.

나라꼴이 실망스럽기 때문에, 더 당당히 두발로 졸업해 이 세상과 함께 몰락하지 않겠노라고, 굳세게 나아가 이런 세상을 내 손으로 갈아엎겠노라고.

이렇게 다짐하는 학생들을 볼 때면 벅찬 마음에 이유 없이 눈물마저 나오곤 한다.

오늘,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을 수능을 마치고 나오는 우리 학생들을 마주쳤을 때 그저 ‘고생했다’는 마음을 담아 따뜻한 눈길만이라도 선물해주는 것은 어떨까.

또 부모와 선생들은 결과와 상관없이 두 팔 벌려 아이들을 꼭 안아주자.

이미 벌어진 작금의 사태를 최선을 다해 올바른 방향으로 수습하고, 아이들에게 이 시대가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적인 시민 항쟁의 시기였음을 기억시켜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이 세대가 기성세대가 됐을 때에는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곪을 데로 곪은 현재 사회의 문제들을 적어도 우리 미래 세대들이 안고 살아가지는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신들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앞으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주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기성세대들의 책무이자 소임이라는 말이다.

끝으로 어려운 시국이지만 오늘은 결론적으로 수능 날이다. 부디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들 모두가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이번 사태에 휘둘리지 않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각자 목표했던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신아일보] 최문한 기자 asia556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