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외치 대통령, 정신 나간 소리
[기자수첩] 외치 대통령, 정신 나간 소리
  • 전호정 기자
  • 승인 2016.11.09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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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데 참 여러모로 재주가 있는 대통령이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만의 이슈가 아닌 주변국들을 비롯해 국제적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중국에서 한때 친근감을 담아 '다제(大姐·큰누님)'라 불리던 박근혜 대통령의 호칭은 이미 '다마(大·아줌마)'로 바뀌었다.

일본에선 성인잡지 등까지 나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논평을 내놓고 있고, 중국과 대만에서도 이번 사태를 조롱하는 영상 등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주변국들만이 아닌 미국, 유럽 등 먼 나라 외신들도 이번 사태에 경악하며 통렬한 비판을 내놓는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독재자의 딸 박근혜는 비밀 참모, 정실 인사, 부정 이득의 소문, 심지어 섹스 등 연속극에나 나옴 직한 내용의 정치적 스캔들 속에 빠져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순실 씨와 박 대통령의 기이한(mystical nature) 관계를 짚은 보도를 보고 많은 한국 국민은 대통령이 ‘돌팔이(quack)’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믿는다"고 표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 대통령이 현재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국기를 문란케 할 뿐만 아니라 안보와 국방의 위기를 더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 외교적으로 박 대통령을 만나더라도 중요한 결정을 미룰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그나마 강력한 의지를 갖고 직접 이끌어왔던 외교·안보 문제를 본인이 직접 자신의 과오를 통해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는 셈이다.

사실 박 대통령만큼 열심히 해외순방 외교를 하는 국가수반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는 비중 있는 국가를 방문할 때면 미리 준비해 그 나라말로 연설했으며, 때로는 몸살이 나 링거를 맞으면서 빡빡한 순방 일정을 소화했다.

정부는 그런 박 대통령의 순방외교 직후 여러 성과에 대해 자화자찬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외교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미국 대통령선거 과정에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공격당했다. 힐러리 클린턴이던 도널드 트럼프든 누가 당선돼도 한미 FTA는 재협상 위기에 놓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은 또 한국산 철강제품에 잇달아 상계·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과 인도까지 한국산 철강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거든다. 사드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일본을 향한 우리 외교부의 저자세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

특히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우리 군 당국은 국민적 합의도 없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까지 체결하려 하고 있다.

사드 배치 발표 이후 껄끄러워진 한중 관계는 갈수록 더 악화되고만 있다.

중국 언론들은 이번 최순실 파문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등 외교·안보 분야까지 작용했다는 의혹에 한국 외교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제 외교도 안보 외교도 이 지경까지 온 데는 시스템 붕괴와 1인 독점 의사결정 구조의 폐해가 작용했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과 ‘종북몰이’를 통해 국내 지지층을 결속하려는, 즉 외교를 국내 정치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데 따른 부작용이라는 분석도 있더라.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기습 개각을 발표할 당시 앞으로도 외교·안보 분야에서만큼은 전권을 쥐고 주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내치 총리, 외치 대통령’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잦은 해외순방에도 불구하고 외교에 필수적인 표현력이나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마저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이 써 준 연설문 없이 과연 혼자의 힘으로 무슨 외교 정책을 벌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독설로 유명한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박 대통령의 외교 정책이 최근 2년간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경향을 보였던 것이 최 씨의 영향 때문은 아닐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단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우리의 외교는 너무나 안타깝기 그지없다. 언제까지 우리 국민이 대통령 하나 잘못 뽑은 죄로 이렇게 국가 이미지가 망가져야 한단 말인가.

피해는 이미 입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이상 더 어떻게 참담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가장 시급히 손을 떼야할 영역은 바로 외교·안보 분야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바다.

아울러 여야는 정부 초기부터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던 외교안보 정책을 미국 대선이라는 전환기를 맞아 하루 빨리 재점검하고 대응할 채비를 갖춰야 한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너무 잦다는 지적을 듣지 않으려면 걸맞은 성과를 내야 하는데, 정작 우리에게 산적한 현안들만 남기고 대통령직의 끄나풀이라도 잡아보겠다는 모습이 참 볼썽사납다.

지겨운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놀이는 이제 끝낼 때가 됐다.

[신아일보] 전호정 기자 jhj@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