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열차를 기다리는 엄마는 '속상합니다'
[기자수첩] 열차를 기다리는 엄마는 '속상합니다'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6.11.0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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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회사를 그만두래요" 요즘처럼 먹고 살기 팍팍한 시대에 어디서 이런 배짱 두둑한 말이 나왔을까. 아내 스스로 일을 관둔다고 해도 쫒아다니며 말릴 판인데 먼저 나서서 그만 두라니.

그러나 이런 말이 나온데는 다른 사정이 숨어 있다. 아내 A씨는 오전 7시가 넘으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평택역으로 향한다. 거주지인 평택과 직장이 있는 서울 사이를 열차로 출퇴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부가 외벌이까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는 다름 아닌 A씨의 교통수단인 '열차'에 있었다. 철도파업이 시작된 지난 9월 27일부터 A씨의 퇴근길에도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퇴근시간대 영등포역의 무궁화호 배차 횟수가 줄어들면서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귀가 시간도 길게는 1시간 넘게 늦어졌다.

무엇보다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이 문제다. 아침에 가장 먼저 선생님을 만나는 이 아이는 철도파업 이후 가장 늦게 선생님과 헤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혼자 남아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직접 느껴보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이 가정에게 철도는 무엇일까. 서울에 살지 않아도 서울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이를 통해 사랑하는 아이와 부부의 꿈을 함께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그런데 그 매개체가 38일째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역대 최장기 철도파업 기록을 깰 때까지만 해도 언론은 철도 노사를 주목했고 국민의 눈과 귀도 이들을 향했다. 이에 압박을 느낀 정부와 철도공사 역시 연일 입장과 대책을 내놓으며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역대급 최순실 스캔들이 몰고 온 파장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고 철도파업은 자연스레 정부와 국민의 관심 순위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철도 이용객과 철도에 물류를 의존하는 산업의 고충은 커져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성과연봉제'며 누구를 위한 '파업'인가. 궁극적으로는 노사정 모두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국민들은 그 누구의 말에도 공감하기 어려운 지경이 돼버렸다. 각자의 명분도 중요하지만 멈춰있는 열차로 국민의 마음까지 얻기는 힘들다.

[신아일보] 천동환 기자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