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 밖 세상] 낯 부끄러운 대학가 신입생 환영회 문화
[렌즈 밖 세상] 낯 부끄러운 대학가 신입생 환영회 문화
  • 신아일보
  • 승인 2016.03.3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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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봄인데 새 학기를 맞은 대학교 신입생들은 도무지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매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새내기 대학생이 과도한 음주로 숨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올해도 대전의 한 대학교 신입생이 지난 22일 선후배 대면식에서 술을 마신 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학생은 전날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대면식에서 술을 마신 뒤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구토를 하는 등 괴로워하다가 잠든 뒤 깨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오리엔테이션과 환영회, 대면식 등은 으레 술과 함께 하는 대학가의 통과 의례로 신입생들에겐 피할 수 없는 자리다.

대학가 신입생 환영회의 가혹한 술 문화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대학교 신입생을 둔 학부모들은 염원하던 자식의 대학입학인데도 걱정부터 앞선다고 한다.

더군다나 최근 대학가의 신입생 환영회는 지나친 음주뿐만이 아니라 성범죄, 폭력이 뒤섞인 군기잡기 문화의 온상으로 전락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부산 한 대학의 동아리는 액땜을 한다면서 음식이 든 막걸리를 신입생들에게 뿌리는가 하면, 전북 한 사범 대학에서는 선배들이 신입생들을 추운 날씨에 모아놓고 막걸리를 수없이 뿌려 문제가 되고 있다.

전남과학대학교에서는 선배들과 대면식을 마친 새내기 여학생이 투신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족들은 이 여학생이 학과 대면식에서 선배들로부터 욕설 등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체육학과에서는 선배들이 신입생 수십명을 땅 위에 머리를 박는 ‘원산폭격’ 얼차려를 수차례 강요했다.

경북 구미의 한 대학교에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총학생회 간부가 침을 뱉은 술을 마시도록 후배에게 강요하고 이를 말리던 다른 후배를 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부 대학에서는 성적 수치심을 줄 수 있는 벌칙을 강요하거나 성적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게 하는 등 성범죄 수위에 달하는 가혹행위가 고발되기도 했다.

서울 건국대에서는 신입생 OT 과정에 유사 성행위를 묘사하거나, 성추행에 가까운 게임이 ‘25금 몸으로 말해요’라는 이름으로 진행돼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문제가 제기됐다.

연세대에서는 신입 여학생을 상대로 성추행을 시도하려 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뿐인가. 학생회가 행사 회비를 가로채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는 고발도 잇따른다.

가천대에서는 행사 미참석자에게 불참비를 거둔 것에 항의가 빗발쳤으며, 대구교대에서는 오리엔테이션 참가비 강제 징수 및 불참에 따른 회비도 거둬 물의를 일으켰다.

대부분의 대학 측은 매년 열리는 오래된 행사라거나 의례라거나 잘 극복해나가자는 의미에서 치룬 전통과 같은 행위였다며 해명한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들이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에 입학해 제일 먼저 보고 겪고 느끼는 것이 범죄나 다름없는 그릇된 문화라니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대학 서열화와 입시 위주의 교육, 중·고등학교 인권 교육 부족 등에서 이런 문제가 비롯된 것 같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조금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기성세대의 환영회 문화와 대학생들의 환영회 문화가 닮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른들의 신고식 문화를 흉내내는 대학의 잘못된 환영회 문화는 그대로 성장해 기성세대로 이어질 테고, 또 그런 기성세대를 보고 배우는 대학생들은 가혹행위에 대한 죄 의식 없이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를 답습한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인과관계의 딜레마를 보는 듯 해 기가 찰 지경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문제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찾아내어 하루 빨리 악습의 고리를 끊어내야만 한다.

대학가의 노력만이 아닌 우리 사회 전체가 자정하고 변화의 노력을 기울여야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반인권적인 작태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다.

끊임없이 반성하고 노력해야만 바꿀 수 있는 것이 잘못 자리잡힌 문화다. 부디 대학가에도 따뜻한 봄 내음이 찾아들기를 바라본다.

/김용만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