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승절 열병식 이후가 중요하다
[사설] 전승절 열병식 이후가 중요하다
  • 신아일보
  • 승인 2015.09.03 16: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中 ‘국제질서 새 판짜기’ 시도 가능성
정부, 현실 직시하고 대책 마련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3일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했다. 한국 민족의 최고 지도자가 중국의 군사퍼레이드에 참석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한·중관계의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단적으로 보여준 일대 사건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주도로 중국의 ‘굴기’(우뚝 일어섬)를 알린 이번 열병식은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15번째지만 항일전쟁 승리를 주제로 한 최초의 열병식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70발의 예포와 함께 시작된 열병식에는 군 병력 1만2000여명과 500여대 무기장비, 200여대 군용기가 총동원됐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둥펑(東風·DF)-41과 ‘둥펑-31B’, ‘젠(殲)-15’를 비롯한 전투기, 공중조기경보기, 무장헬기 등 첨단 무기가 대거 공개됐다.

중국은 ‘진입’-‘행진’-‘열병’-‘분열’-‘해산’ 등 5단계로 70분간 진행된 열병식을 통해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엄청난 군사력을 과시, G-2중국의 글로벌 파워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이러한 ‘군사굴기’를 바라보는 미국과 일본의 시선은 무겁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東風)-41과 둥펑-31B은 사거리가 각각 1만4000㎞와 1만1200㎞로 미국 본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고, 심지어 10개의 핵탄두를 장착하는 둥펑-41이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열병식 연설에서 항일과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의 의미를 설명하고 세계 평화 수호의지를 밝혔지만, 미국과 일본은 착잡할 것이다. 특히 공산당 팔로군에서 항일전쟁에 합류했던 일본인 노병 고바야시 간초(小林寬澄·96)가 열병식에 참가한 것을 지켜본 일본인들은 팔짝 뛸 일이다.

마치 이번 열병식이 ‘한·중·러의 항일연대’로 비쳐진 것도 일본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까지 이번 열병식에 참석했으니 일본의 심경은 어떠했겠는가.

북한 역시 혈맹인 중국이 한국을 가까이하는 것을 보고 가슴을 쳤을 것이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웃으며 박수치는 화기애애한 모습을 본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는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 이후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한국 외교는 이제부터다. 한·미, 한·일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남북관계도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10월말~11월 초 개최될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박 대통령의 최대 과제다.

10월의 한·미 정상회담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열병식 이후 중국 견제 차원에서 미국과 일본의 밀월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한국 외교의 기반은 미국과 일본이다. 한국이 중국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긴요한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에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지렛대로 삼아야 하는 우리 외교의 절실함이 있음을 미·일에 잘 설명해야 할 것이다.

북핵6자회담 재개에 키를 쥐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립·갈등, 중·일갈등도 적절하게 중재해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중국의 우대에 우리가 우쭐하는 것은 금물이다.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 열병식 이후 한국외교는 더욱 차분한 기조를 유지하면서 국익 최우선의 실용주의 노선을 걸어야 할 것이다.

우려되는 대목 또한 적지 않다. 중국의 이번 전승절 열병식은 ‘중화부흥’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인민복을 입고 등장한 시 주석과 장쩌민,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을 비롯한 전직 중국 지도부와 원로들의 ‘미소’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위대한 승리’가 ‘중화부흥’으로 이어진다면 향후 동북아 질서는 엄청난 파고를 맞이할 수도 있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국제질서 새 판짜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군사굴기’를 통해 동북아의 주도권을 갖게 된다면, 한반도의 미래가 중국에 좌우될 수도 있다.

‘중화(中華)’란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뜻이다. 한(漢)나라 때 발원한 ‘중화사상(中華思想)’은 역사적으로 중국이 자신의 문화를 자랑하면서 타 민족문화를 야만시하고 배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부는 ‘중화부흥’이 한국에게 미칠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