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긴장상태면 고려인도 잠못이뤄… 소원은 통일”
“남북 긴장상태면 고려인도 잠못이뤄… 소원은 통일”
  • 신혜영 기자
  • 승인 2015.08.2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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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 니콜라이 사마르칸트 고려인문화협회장
 

“실크로드의 도시 사마르칸트에서 열리는 국제 민족음악 축제에 한국팀이 나올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운데 한민족이 통일돼 남북 단일팀이 나온다면 얼마나 기쁘겠어요.”

고려인 3세인 김 니콜라이 사마르칸트주 고려인문화협회장(73)은 4번째 ‘샤르크 타로날라리(동방의 선율)’ 축제에 초청돼 관람하지만 매번 감회가 남다르다.

26일(현지시간) 축제가 열리는 리게스탄 광장의 객석에서 만난 김 회장은 “통일이 안 됐어도 이런 ‘문화 올림픽’에는 남북이 어깨동무하고 함께 참가했으면 좋겠다”고 염원했다.

그는 “최근 북한의 지뢰 도발로 남북 간 긴장관계가 이어졌을 때 고려인들은 모국 걱정, 한국 취업 나간 친·인척 걱정으로 잠을 못 이뤘다”며 “다행히 평화적으로 타결되고 오히려 이산가족 상봉 등 평화교류가 추진된다는 소식을 듣고 축제에 오니 한결 맘이 편하다”고 털어놓았다.

사마르칸트 주에는 고려인 5300여명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사마르칸트시에는 3000명 정도가 살지만 대부분 노인이다. 젊은 층이 한국과 러시아 등지로 꿈을 찾아 나갔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부친은 1937년 구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한 고려인이다. 이곳에서 태어났지만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모두를 소중하게 여기며 산다.

“고려인은 강제 이주 초창기 정착을 도와줬고 지금까지도 살갑게 대해주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모국이 그립기도 하지만 지금은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삽니다. 그래서 외국에 돈 벌러 간 사람들도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하는 게 꿈이죠.”

고려인협회는 매년 주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과 공동으로 ‘고려인 합창대회’를 연다. 사마르칸트 고려인 합창팀인 ‘사랑’은 민요와 트로트 등을 선보여 상위 입상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은 갑자기 ‘아리랑’을 불렀다. 그러면서 “나이 든 고려인이라면 누구나 ‘신나는 가락의 아리랑’과 ‘슬픈 곡조의 아리랑’을 알고 있다”며 “그래서 기쁘고 흥겹거나 슬프고 힘들 때마다 아리랑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회고했다.

사마르칸트 고려인은 설, 단오, 한식, 추석 등 명절 때마다 협회 회관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 전통을 지금도 지켜오고 있다.

그는 “명절 잔치 때면 여러 소수민족 단체장 등을 초청한다. 맛난 한식을 함께 먹고 흥겨운 춤과 노래마당도 열고 있어 인기”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2009년부터 협회장으로 봉사하는 그는 재외동포재단이 고려인을 모국으로 초청할 때마다 자신은 아직 젊다며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양보했다.

“산업연수생이나 유학 등 한국 갈 기회가 많은 젊은이와 달리 노인은 연고가 없으면 좀처럼 방문 기회를 얻기 어렵습니다. 점차 유명을 달리하시는 이들이 초청 혜택을 받아 모국이 눈부시게 성장한 모습을 보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집단농장에서 태어난 그는 사마르칸트 기술전문학교(현재 건축대학) 수자원학과를 졸업 후 하천과 운하 등을 관리하는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2007년 지역수자원공사 사장을 지내고 정년퇴직했다.

김 회장은 구소련 붕괴 직후 잠시 공무원 신분을 벗어나 3년간 돼지를 사육하는 집단농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당시 개혁·개방의 열풍으로 농장 대표를 정부에서 임명 안 하고 농장 구성원 투표로 선출할 때 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농장에 고려인은 나 혼자라서 생각도 못했는데 저를 뽑아주더군요. 평소 부지런하고 양보를 잘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나 싶었습니다. 구성원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일하다 보니 연간 500t도 생산 못 하던 농장이 2년 만에 1000t으로 늘어 정부 표창도 받고 부상으로 자동차를 차례로 12대나 받았습니다. 이때도 다 나눠주고 저는 마지막 한 대만 가졌죠.”

김 회장은 130여 개 소수민족이 함께 사는 우즈베키스탄에 민족 분쟁이 없는 이유가 “양보의 미덕”이라며 “같은 한민족인 남북한도 대립보다는 대화와 교류로 사이좋게 지내야 통일도 꿈꿀 수 있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