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곶자왈 ‘숲 읽어주는 여자’ 이지영
제주 곶자왈 ‘숲 읽어주는 여자’ 이지영
  • 김가애 기자
  • 승인 2015.07.2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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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땅 아닌 생명력 넘치는 곳… 멈춰 서서 천천히 보세요”
▲ 지난 24일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환상숲에서 곶자왈 숲을 소개하는 해설사 이지영씨(29·여).

“곶자왈은 ‘농사 못 짓는 땅’, ‘버려진 땅’이라고 불리던 곳이에요. 그런데 배우고, 알고 나니 가시덤불 사이로 생명력 넘치는 숲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곶자왈 ‘환상숲’에서 숲 해설을 하는 이지영씨(29·여)는 “어릴 때부터 매일 봐오긴 했지만 숲에 대해 배우고 나니 돌 위에 뿌리를 뻗고, 잘린 곳에서 새 가지를 내면서 악착같이 살아가는 곶자왈 식물들의 모습이 보이더라”며 숲의 생명력을 예찬했다.

환상숲은 이 씨의 아버지 이형철 대표가 직접 가꾼 곳이다.

이 대표가 정원을 만들고 싶다며 사들여서 20년 가까이 묵혀놓은 땅이었다. 가시덤불이 무성하게 자라 숲 안으로 들어가려면 낫으로 덤불을 헤치며 들어가야 했다.

신협에서 20여년간 근무한 이 대표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경색으로 몸을 온전히 가누기 어렵게 되자 예상보다 이르게 퇴직한 뒤 농사일을 하면서 자신이 걸을 산책로를 내기 위해 직접 길을 조금씩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간 매일 숲을 걸으며 돌을 나르고 길을 내다보니 몸은 완쾌되고, 길도 완성됐다.

처음에는 식물을 소개해주는 교육농장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학부모들을 통해 알음알음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 대표도 처음엔 신나서 숲을 소개해주다가 사람들이 계속해서 찾아오며 농사일을 하지 못할 정도가 되자 방문을 막을 요량으로 요금을 받겠다고 했다. 그래도 숲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자 지난 2011년 정식으로 문을 열고 운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초창기 운영 상황은 열악했다. 일손이 모자라 이 씨의 아버지가 해설하고 할머니가 매표소를 맡았다. 수입이 20만원에 불과한 달도 있었다.

그러다 서울의 지역아카데미에서 농촌마을 컨설팅 연구원을 하던 이 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운영에 합류하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씨와 이 씨의 아버지, 어머니, 남편 등 5명의 숲 해설사가 시간대마다 돌아가며 해설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하루 방문객이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한다.

이 씨는 “시골에서 자라며 ‘공부 열심히 해서 농부는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지만 여러 농촌마을을 컨설팅하며 정작 부모님은 도와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돌아왔다”며 “이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숲에 대해 아직도 잘 몰라 지금도 배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환상숲을 찾은 사람들에게 숲을 ‘읽어주고’ 있다. ‘곶자왈’이라는 단어부터가 낯선 다른 지역 관광객들에게 “제주어로 ‘곶’은 숲, ‘자왈’은 가시덤불”이라며 이곳이 왜 곶자왈로 불리는지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해 이곳의 식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