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기 피해 목소리 일본에 전달할 것”
“강점기 피해 목소리 일본에 전달할 것”
  • 신혜영 기자
  • 승인 2015.07.2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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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人 노기 가오리 한국서 ‘재일조선인단체사전’ 제작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 한국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의 일본인 연구원 노기 가오리씨.

“저처럼 한국에서 역사를 연구하는 일본인이 특별하게 인식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본인이 많아지는 때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한국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유일한 일본인 노기 가오리 연구원(35·여)의 말이다.

노기 연구원은 20일 “한국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일본인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한일 과거사에 관심 없는 일본인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초 일본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 사회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노기 씨는 3월부터 이 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재일조선인단체사전 제작 프로젝트가 주임무다.

노기씨는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연구소에서 찾고 싶다”며 “주변국과 다양한 갈등을 빚어온 일본의 국민이야말로 이런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교토(京都) 출신인 노기씨는 어릴 적 이웃에 사는 재일 한국인들을 보면서 이들이 왜 일본에 왔고,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을 궁금해하다가 한국에 관심을 두게 됐다.

노기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한일 과거사에 대한 궁금증은 수업을 통해서도 속시원히 풀리지 않았다고 했다.

대학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한국으로 건너와 연구소에 와서야 비로소 진실한 역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일본은 자신이 가해자였던 역사 속의 피해자들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늘 한일협정으로 모든 사죄와 보상이 끝났다고 말하죠. 일본에는 과거사 해결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최근 강제동원 등의 어두운 역사가 담긴 일본 근대산업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그가 특히 아쉬워한 부분 중 하나다.

노기씨는 “일본은 근대산업 시설을 어두운 역사, 즉 ‘부(負)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공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했어야 했다”며 “하지만 일본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거사의 책임 소재를 제대로 밝히는 것이다.

그는 “주어 없이 모호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국가와 기업 등 누구의 책임으로 어떤 피해가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과거사 문제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도 시설 등을 마련해 과거사를 기억하고, 후손들에게도 이를 가르쳐야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된다고 제시했다.

노기씨는 “망각의 늪에 빠지지 않아야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피해자든 가해자든 같은 마음인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면 일본은 다시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말로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과거사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삼고 고민해야 한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일본뿐만 아니라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 모든 이들이 가슴 속에 과거사 문제를 새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얼마 남지 않은 일본강점기 피해자와 유족들의 목소리를 일본에 전달하는 것이다.

노기씨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때 이들의 존재를 일본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일본에는 생존한 한국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이 세상을 떠나면 점점 더 잊힐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일 시민사회가 축적한 다양한 기록과 증거들을 일본과 국제사회에 알리고 부족한 부분을 계속해서 조사할 것”이라며 “피해자의 모습을 일본 사람들이 제대로 볼 수 있게 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