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수단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한국과 수단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 고아라 기자
  • 승인 2014.12.1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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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청소년상 최우수상 받은 대경정보산업고 박지한군
 

대경정보산업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박지한(17) 군은 학교에서 단연 돋보이는 팔방미인이다.

교내 성적 우수상은 기본 영어 말하기 대회, 태권도 겨루기 대회, 창업 경진 대회 등 학교 밖 대회를 휩쓸며 화려한 ‘스펙’을 쌓는 중이다.

그렇다고 박 군이 성적이나 수상 실적만 쫓는 이른바 ‘범생이’는 아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은 박 군은 1학년 때부터 반장을 도맡았다.

이런 박 군에게는 한 가지 더 특별한 점이 있다.

그는 수단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집트 바로 남쪽에 있는 북아프리카 국가 수단은 한국인에게 무척 낯선 나라이기도 하다.‘한국을 안다’는 뜻의 지한(知韓)이라는 이름은 수단과 한국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는 박 군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듯했다.

다소 가무잡잡한 피부색에 이국적 외모를 지닌 박 군도 소수자로서 지독한 설움을 겪으며 자라났다.

최근 학교에서 만난 박 군은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의 아픈 기억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아이들이 자꾸 ‘아프리카 샤랄라’라고 놀리는데 너무 화가 나서 다툼이 생겼어요. 어디서 힘이 났는지 의자를 휘둘러 창문을 부순 것 같은데 제가 혼이 났어요. ‘엎드려뻗쳐’ 자세를 하고 바닥을 내려다보는데 눈물이 나면서 시야가 흐려지더라고요…”

박 군이 찾은 생존법은 ‘긍정의 힘’을 믿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성격을 바꾼 거예요. 재밌고 활발한 아이가 되니까 친구들도 주변에 자연스럽게 모여들더라고요.”

놀리던 아이를 때려주고 싶다는 어린 마음에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한 태권도는 거꾸로 박 군에게는 인내심을 키워주는 인생의 수련 도구가 됐다.

청소년 최고 등급인 4품 자격을 딴 박 군은 최근 용산구 주최 태권도 겨루기 대회에서 고등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다문화 가족이라는 배경이 어린 시절 시련을 주기도 했지만 지금 박 군은 “다문화는 나의 힘”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박 군의 선생님은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시키는데 지한이가 아랍어로 인사한 뒤 아버지가 수단 분이고 어머니가 한국 분임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며 “아랍어를 처음 접해 놀란 친구들도 있었고 저도 지한이를 눈여겨보게 됐다”고 말했다.

따갑게만 느껴졌던 세상의 시선도 이제는 많이 변했다고 박 군은 털어놓는다.

“요즘 사람들은 대뜸 ‘너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이렇게 묻지 않아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예쁜데 혹시 가족 중에 외국 사람이 있느냐?’ 이런 식이죠. 그렇게 예의를 갖춰주면서 물어보면 저도 좋지요.”

다만 여전히 박 군이 질색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수단이 좋으냐, 한국이 좋으냐?”는 것이다.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는 게 맞나요. 그런 질문을 들으면 이제는 그냥 듣고 흘려 버리죠.”

박 군에게는 최근 좋은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모범 다문화 청소년’으로 인정받아 지난 1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다문화청소년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인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받게 된 것이다.

179㎝의 큰 키에 훤칠한 외모를 지닌 박 군은 꿈 많은 고교 2학년생이다. 수단과 한국을 잇는 다리가 되는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은행원이나 패션 산업 종사자가 되고 싶기도 하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데 얼마 전에는 이태원의 한 정장 집에 무턱대고 들어가서 사장님한테 어떻게 이 일을 하시게 됐는지, 이 일을 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여쭤봤어요. 시험 기간도 끝났으니까 다시 한 번 찾아가 뵈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