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그린치 신부 "가난한 병자의 임종에 관심을"
맥그린치 신부 "가난한 병자의 임종에 관심을"
  • 김가애 기자
  • 승인 2014.11.1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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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서 사회공헌 사업 60년…아일랜드 대통령상 받아

 ▲ 패트릭 J.맥그린치 신부
[신아일보=김가애 기자] "한국에는 죽음을 앞두고도 쉴 곳이 없는 가난한 병자들의 임종을 돌봐 줄 호스피스 서비스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60년간 봉사활동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달 30일 아일랜드 대통령상을 받은 패트릭 J.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86) 신부는 수상소감을 대신해 전문 호스피스(hospice) 서비스를 한국에 뿌리내리게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팔십을 넘긴 나이에도 제주시 한림읍 이시돌복지의원 내에 무료 호스피스 시설에서 죽음이 가까운 가난한 환자들의 육체적·심리적 고통을 덜어주며 편안하고 존엄한 임종을 돕고 있다.

아일랜드가 고향인 맥그린치 신부는 26살의 젊은 나이에 사제 서품을 받고 나서 3년 5개월이 지난 1954년 4월 이역만리 떨어진 제주 땅을 밟았다. 올해는 그가 제주에서 선교는 물론 이시돌목장 설립, 신용협동조합, 직물사업 등 수많은 사회공헌 사업을 해 온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이런 그가 7년 전 의료복지에까지 뛰어든 데에는 모든 사람은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가 있으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런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시돌목장의 사료공장과 종마사업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호스피스를 찾는 가난한 이웃들을 무료로 간호해주는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병원을 찾는 이들을 모두 돌봐주기에는 운영비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는 이시돌복지의원의 호스피스에 대해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후원해주기를 바랬다.

그는 신부의 몸으로 선진 농업기술을 배워 척박한 제주 땅을 부농으로 일구고 그 결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맥그린치 신부와 4H 클럽 회원 등은 1961년 한림읍 금악리 정물오름 1만여㎡를 성이시돌목장으로 일궈 내 다른 지방에서 들여온 '요크셔' 종의 돼지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금세 돼지들이 1만3000여 마리로 불어나 1960년대 중반에는 이시돌목장이 국내 최대의 양돈 목장으로 성장했다.

그는 "초창기 4H 회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시돌목장 개발에 매진했다. 그들 대부분은 이시돌목장에 인생을 바쳤다"며 "그들의 열정이 너무나 고맙다"고 소회를 밝혔다.

일감이 없어 멀리 다른 지방의 공장으로 떠나야 하는 제주의 소녀들을 위해 '한림수직'을 세워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한림수직은 10여 년 전 국외에서 저가의 양털제품이 대량으로 수입되는 바람에 문을 닫아야 했으나 한 때 최상 품질의 양털 스웨터를 생산했다.

그는 한림신용협동조합도 만들어 농민들이 안심하고 돈을 맡기고 빌릴 수 있게 해 농·축산업을 키우는 밑거름을 제공하는 등 제주의 1차 산업 근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가 일궈낸 선진 축산 기술은 제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에 보급됐다.

지난해부터는 맥그린치 신부를 기리려는 기념사업이 마을주민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는 "기념사업을 한다면 제주 사람들이 스스로 누군가를 돕는다는 의미를 담아야 한다"며 "나를 위해 쓸 돈이 있다면 호스피스 사업을 위해 쓰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고 진정 살아있는 기념사업"이라고 당부했다.

그는 "젖먹이 갓난아이가 배가 고프거나 대소변을 보면 한밤중에 잠에서 깨 울음을 터트린다. 그 순간 잠에서 깬 아기의 어머니는 힘이 들더라도 아이를 기꺼이 돌봐준다"며 "이런 어버이의 마음처럼 제주도민이 스스로 누군가를 위해 실제로 희생하고 도와주는 사랑을 베풀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시돌협회는 지난달 30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대통령관저에서 열린 수상식에 맥그린치 신부가 참석하지 못해 주한 아일랜드대사가 조만간 이시돌목장을 방문해 상패를 전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