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 주지 금강스님, 진도서 매일 예불·치유상담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 진도서 매일 예불·치유상담
  • 온라인 편집부
  • 승인 2014.05.06 13: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 많은 인원이 바닷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잠자리에 들 수가 없어"
▲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관매도와 팽목항 사이로 지는 저녁노을이 아름다워 바라보던 저곳. 이제는 노을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꽃같은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떨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남의 아픔이 아니다."

전남 해남 땅끝마을 미황사 주지 금강(48, 사진) 스님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난달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달마산 자락에 자리 잡은 미황사는 우리나라 육지의 절 가운데 최남단에 있다. 진도 앞바다의 사고 현장이 직접 보이는 유일한 사찰이다.

지난 2일 미황사에서 만난 금강 스님은 사고 당일 밤을 꼬박 새워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었다.

"야간 구조작업을 위해 쏘아 올리는 조명탄 불빛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그 많은 인원이 바닷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어요."

진도 앞바다를 내려다 보는 미황사도 이번 참사처럼 가슴 아픈 역사를 지녔다.

749년 창건된 미황사는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 제자들이 살게 되면서 승군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군고패(軍鼓牌) 전통이 이어졌다. 그러다 지금부터 120여년 전 미황사 군고패가 중창불사에 필요한 시주를 위해 청산도로 공연을 가던 도중 배가 침몰해 스님 40여 명이 숨졌다.

암자만 12개에 달할 정도로 큰 절이었던 미황사는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100여년 동안은 스님 한 명만이 절을 지켰다. 전각도 대부분 무너지고 두 채만 남으면서 폐찰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다 1989년 금강 스님이 은사 지운 스님을 모시고 온 뒤 중창불사가 다시 시작됐다. 그 뒤로 금강 스님의 사촌사형 현공 스님이 10년 넘게 불사를 맡았고 지금도 불사가 진행 중이다.

"한 소년이 시냇가에서 놀다가 어미 수달 한 마리를 죽이고 뼈를 버렸습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뼈가 사라진 거예요. 핏자국을 따라가 보니 예전에 살던 굴로 돌아가 새끼 다섯 마리를 품고 있더랍니다. 자식 잃은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금강 스님은 세월호 참사 다음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고 그날부터 매일 진도를 오가고 있다. 오전에는 수행과 초파일 준비 등 절 일을 보고 오후에는 진도로 건너가 피해자 가족을 상담하고 예불을 올린다.

그는 생명과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돈과 책임 소재를 중시하는 풍조를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우리의 총체적 허술함이 드러난 겁니다. 직접 연관된 사람들이 좀 더 진실했으면, 첫 단추가 잘못 됐더라도 한 명이라도 더 건져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예요. 이제라도 진실한 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는 "누구를 타깃으로 삼아 처벌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면서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생명,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제도든 매뉴얼이든 올바로 만들고 제대로 돌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