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진 벚꽃이 그리운가? '슬픈 꽃'이여!
일찍 진 벚꽃이 그리운가? '슬픈 꽃'이여!
  • 신아일보
  • 승인 2014.04.2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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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암 시사평론가

▲ 정종암 시사평론가
제주산 왕 벚꽃이 귀화해 일본의 국화 격이 된 벚꽃(Japanese Cherry)이 명이 긴 놈만 남기고 다 사라진 4월의 끝자락이다. 금방 활짝 피고는 아름다움을 발하다가 순간에 지듯이 덧없는 삶에 비유할 수는 있다. 꽃비에 이어 봄비가 내리면 푸른 잎만 남긴다. 필자는 벚꽃 피는 계절이 오면 슬픔과 분노에 찬 펜을 든다. 그 화려함에 추억으로 남기고자 전국적인 광란의 춤판이다. 꽃말처럼 순결하고 절세미인일지언정, 한민족이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이는 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이란 독일 영화 속 흐드러진 벚꽃 아래 추는 일본 소녀의 '부토 댄스'에 취했나? 노부부가 베를린에 사는 자녀에게 보이지 않는 냉대와 무관심에 상처를 받은 후 발틱해 여행에서 아내 '트루디'가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았었다. 그 후 아들 '칼'을 만나려 홀로 도쿄에 간 주인공 '루디'는 그곳에서조차 무관심이라 시내를 헤매다가 벚꽃이 흩날리던 공원을 거닌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 아래 죽은 아내의 속옷을 입은 채 생전의 그녀가 좋아하던 그림자 춤인 부토를 추는 주인공의 춤사위는 눈물샘을 짜면서도 아름답다. 삶이 젊음의 한 순간을 정점으로 늙어가듯 흩날리는 벚꽃 역시 조용하고 쓸쓸하게 진다.

조건 없는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시적으로 섬세하게 표현된 영화는 추억 속에 묻고 자존심을 찾아야 한다. 만개한 사쿠라 아래에서 즐기는 꽃놀이(花見:하나미)는 일본의 국가적 행사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벚꽃은 대한민국, 사쿠라는 일본국'이라며 애써 변명만을 할 수 없다. 축제라는 미명하에 벌이는 벚꽃놀이에 대한 우리의 정서는 '너무나도 먼 당신 격'이다. 그것은 식민지배에 의한 상처와, 그리고 항일과 수난의 역사에서 그들을 용서하고 잊을 수 없는 '가깝고도 먼 이웃'으로 우리에게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일제는 무궁화가 태극기와 함께 민족과 조국을 상징하는 강력한 존재임을 간파하고, 우리 민족과 떼어놓기 위한 흉계를 꾸몄다. 볼품없고 지저분한 꽃으로 격하시키며, 어린 학생들에게 "무궁화를 보면 눈병이 나거나 소경이 된다"고 가르쳤다. 또한 국화말살정책으로 무궁화를 못 심게 하면서 캐낸 자리에는 벚나무를 심게 했다.

국권이 상실되던 해 애국지사 황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절명시를 남겼고, 김좌진은 "삼천리 무궁화 땅에 왜놈이 웬일인가"라고 부르짖었다. 여인들은 삼천리 지도 위에 8도를 상징하는 여덟 송이 무궁화를 수놓으며 광복의 그 날까지 민족정신을 이어 갔다. 남궁억은 전 강토에 민족정신의 상징인 무궁화 묘목을 심어 삼천리 무궁화동산을 일구는 운동을 펼쳐 홍천에서 가꾸어 해마다 수십만 그루씩 보급해 겨레의 얼을 지키고, 질긴 역사의 믿음과 전망을 확산했었다. 일제는 그러한 행동이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반일사상의 발로라 하여, 1933년 이른바 무궁화사건으로 체포해 옥고를 치르게 하였다. 태극기와 함께 무궁화를 우리 민족과 떼어놓기 위한 흉계까지 꾸몄다.

서구에서는 '사론의 장미(Rose of Sharon)'이자 '꽃 중의 꽃'으로 칭송받는 무궁화가 냉대 받는다. 민의의 전당에 벚꽃이 난무해도 '인간 사쿠라'들조차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친일에 대한 향수인가. 무지의 극치인가. 축제도 축제 나름이고, 꽃도 꽃 나름이다. 그 많은 꽃 중에서도 유독 '벚꽃 축제'란 이름으로 환호하는 이중성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전국에 산재해 있는 벚나무를 다 잘라 다른 용도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하자.

이러한 때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武錫)시에 한·중이 공동으로 우호증진을 위한 '무궁화동산'을 조성하기로 하고 지난달 29일 현장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또한 지난 3일에는 교육부와 산림청은 교육환경 개선과 나라사랑을 위하여 무궁화 묘목을 전국 초·중등학교에 무상 공급하는 협약을 체결하고, 정부 세종청사 주변에서 학생들과 함께 '무궁화동산'과 '무궁화 꽃길'을 조성하는 나라꽃 심기 행사도 가지기는 했다.

조금은 위안이 되지만 아직도 멀었다. 백성의 꽃이자 국화(國花 )인 무궁화를 냉대하는 부끄러움은 거두자. 21세기 세계질서 속 동반자로 함께해야 할 일본임에도 침탈야욕은 끝이 없다. 행여나 용서는 하더라도 그 행위까지 잊을 수 없다. 한민족으로서의 배알이 있다면 '벚꽃의 유희'만은 없애자. 그들의 국화 격인 벚꽃 아래에서 너울너울 춤추는 것은 멈추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