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 규율은 엄할수록 좋다”
“선상 규율은 엄할수록 좋다”
  • 주장환 순회특파원
  • 승인 2014.04.2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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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주장환 순회특파원

대항해 시대 ‘선상 규칙서’ “무시무시”
국내 내항선 규율 제대로 잡혀있지 않아

선상 기율을 어떤 식으로 정립하고자 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문건은 이른바 ‘대항해 시대(15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이는 ‘선상규칙서(Letter of Articles)'이다. 그 내용을 보면 선장의 권한은 무소불위다.

“어느 누구든 선장이나 그 대리인의 명령을 거부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상급 간부들로 구성된 법정은 재판권을 전적으로 가지며 판결은 사무장이 즉각 집행한다. 사무장의 일에 간섭하거나 비협력자는 반란자로 처벌된다. 탈주 혹은 불허 보트의 사용은 채찍질에 처한다. 누구도 허락없이 육지에 상륙하거나 밤을 보내서는 안 된다.”

당시 항해의 사고 발생 비율은 어느 정도였을까? 인도 항해를 예로 들어보자. 1600-1635년, 912척이 포르투갈 리스본을 출발해 인도로 향했는데, 이 가운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60척이 바로 회항했고, 84척이 가는 도중 실종됐으며,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한 배는 84.2%인 768척이었다.(포르투갈 해양사 전문가 M. Godinho 연구)

리스본으로 회항한 배를 제외하고 실제로 아시아를 향해 떠난 배 852척만 고려해 계산하면 10%가 사라졌다. 이를 연평균으로 계산하면 매년 2-3척이 바다의 재물이 된 셈이다.

선장이 배안에서 제왕적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은 사고율이 높은 이유에서 비롯됐다. 어느 사회나 조직이든 많은 인력을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으로 복종하게 하려는 현상이 일어난다.

선상에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장과 간부가 전권을 가지고 장악해야 했다. 폭력 역시 이들이 독점한다. 선원들 간의 폭력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명시돼 있다.

“먼저 싸움을 건 자는 철장에 가두고 음식은 빵과 물을 죽지 않을 만큼 준다. 규율을 어긴 자에게 음식을 주거나 어떤 방법으로든 그의 처벌을 가볍게 하려고 하는 자는 동일한 처벌을 받는다. 칼을 빼든 자는, 비록 그저 한 번 위협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심각한 일로 간주된다. 첫 번째 위반자는 세 번 연속 활대 끝에서 바다로 빠뜨리는 벌을 준다. 두 번째 위반자는 킬홀(keelhaul/몸을 줄에 맨 다음 배 밑을 헤엄쳐 지나가게 하는 처벌)에 처한다.”

이처럼 선상에서의 질서를 깨뜨리는 모든 행위는 철저히 규제됐으며 그것이 어느 정도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선박이 대형화되고 항해의 전체 규모도 교역의 증대와 함께 크게 늘어났다. 바다의 위험은 여전히 컸지만 그것을 내부적으로 소화할 수있는 시스템도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후 상선 대신 여객선이 늘어나면서 상기와 같은 엽기적인 질서 유지 방법은 사라져갔지만 선상에서의 기율은 여전히 엄격하다. 선장, 기관장, 갑판장 등 상급선원들은 작업효과를 높이고 안전운항을 하기위해 군대이상의 규율로 하급선원들을 다스리고 있다.

25년 경력의 외항선장인 서형주씨는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주요인으로 경험없는 선원을 꼽으면서 “선상생활에서 기강이 문란해지면 승선자 전원이 큰 피해를 볼 수있기 때문에 규율이 엄할 수밖에 없고 최소한의 체벌은 불가피하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나 외항선과 달리 내항선의 경우 “규율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부언했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건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선장이 자리를 이탈하고 경험이 없는 3등 항해사가 지휘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선장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만큼 책임도 그 만큼 막중하다. 자리 이탈은 물론, 여객들을 버리고 먼저 탈주한 선장 뿐 아니라 선박요원들 모두가 선상에서의 규율을 너무 가벼이 여긴 듯하다.

모두가 각자 맡은 위치에서 본분을 다해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을 담보로 한 기율은 엄격할수록 좋으며 책임은 지켜야만 그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