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조선조 두 문사의 삶을 되새기며
상반된 조선조 두 문사의 삶을 되새기며
  • 신아일보
  • 승인 2014.03.18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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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암 시사평론가

▲ 정종암 시사평론가
언젠가는 이승을 등지고 가야만 하는 우리네 삶에서 충신이 아니면서도 충신이었고, 역적이 아니면서도 역적이었던 역사 속 우정이 있다.

그리고 물질만능에 황폐화돼 인문학에서 삶을 관조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 팍팍한 삶에도 '내 인생의 봄'을 맞아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대 혹독한 비평가였던 매월당 김시습이 춘천 청평사에서'有客(유객)'이란 시를 읊었다. 그는 서거정과 당대 최고의 문사관료였던 이계전에게 동문수학했지만 쿠데타였던 계유정난이 묘한 우정일 수밖에 없었던 계기였다.

쿠데타 세력에 줄을 선 서거정, 그 반대편에 섰던 김시습이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세상을 비관하고 책을 불사르고 설잠(雪岑)이라 자호하고는 방랑하면서 세상의 허무함을 읊었다. 이러했던 그가 '달이 있으면 술이 없고, 술이 있으면 달이 없도다'는 '상서강중(上徐剛中)'이란 시를 서거정에게 올렸다.

김시습이 '세상사 뜻대로 안 된다'는 뜻이다. 세상사 얻고 잃는 것이 굴러가는 수레바퀴와 같음에 비유한다. 그게 평행선을 달려 둘의 삶은 정반대였다.

혹자의 비평가는 '그가 서거정에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면서 무슨 벼슬 등을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다'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그는 벼슬이나 안위를 구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서거정 그대도 언젠가는 내 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으니 너무 까불지 말라'고 조소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 조소는 빗나갔다. 서거정은 여섯 왕을 모시는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면서 럭셔리한 삶을 구가했다. 그러나 귀족적인 삶의 한 켠에서는 외로웠다. 이에 김시습에게 ‘나에게는 술이 가득한 동이가 있고, 땅위의 달도 있네‘라는 '차운청한견기(次韻淸寒見奇)'란 답시(答詩)를 보낸다.

그는 김시습의 시에서 무엇인가에 대한 부족함과 불만을 토로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기에 달도 술도 다 있는 이 좋은 세상으로 나와서는 권세와 그윽함을 나누고자 하였으나 사양하니까 '자네에게 부족함이 많은 일이 생긴다'고 응수했다.

그러나 서거정은 김시습의 참뜻을 읽지 못했다. 권력과 안위를 탐했으면 김시습도 쿠데타 세력인 수양대군의 편에 섰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과 문종의 총애를 받았던 그는 단종의 왕위찬탈을 거부하고 속세를 떠난 삶이이었기에 무엇을 바라는 아부성은 아니었다. 반면 서거정은 정권이 바뀌어도 권력의 중심에서 살았던 면모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술과 달이 있는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김시습은 수양대군을 저주하고 저항하면서 비판하는 자유로운 삶을 택했다.

권력의 편에 늘 섰던 서거정도 자연의 법칙을 뛰어넘을 수는 없어 만년에는 광나루 부근의 쌍수정(雙樹停)에서 강호생활의 낭만과 여유로움을 만끽하다가 68세 때는 연산군에게『논어』를 강하였지만, 이듬해 생을 마쳤다.

반면 김시습은 스승인 이계전이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동조하여 공신록에 오르자 스승은 물론 동문인 그의 아들까지도 내왕을 끊었다. 유교적 명분을 뒤흔든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모든 책을 불살라 버리고 평생 방외인이었다.

이러한 행보가 자신으로 하여금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쓰게 하고, 차를 벗 삼아 다성(茶聖)으로 우뚝 서게 하였다. 반면 서거정은 침묵하며 세조 정권에 충실하면서 대제학을 23년간 독점하게 된다. 실로 대단한 처세술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정치적 입장은 달랐지만, 둘은 문사로서의 능력과 인물됨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김시습은 동문수학한 서거정에게 손수 재배한 작설차를 보내고 우의를 다졌다. 이러한 일화에 '서거정의 인간미가 보이는 듯하다'고 혹자들은 평하나, 유독 김시습 외는 널리 교유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그렇지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하들에게 냉혹함 등이 묻어나기에 이를 뒷받침한다. 자신의 운명에서 최선을 다한 처세술의 달인으로 보이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배고픈 게 문필가였음이 다반사임에도 김시습과 달리 서거정은 그러하지 않은 삶을 산 것만은 분명하다.

 

/정종암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