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 참고 견딜 뿐, 방향 틀지 말고 한 길”
“어려움 참고 견딜 뿐, 방향 틀지 말고 한 길”
  • 문경림 기자
  • 승인 2013.12.2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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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조랑말과 함께’ 제주 고태오 할아버지

 
[신아일보=문경림 기자]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라”라는 옛말이 있다. 바람 많고 돌 많은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삶을 개척했던 제주의 선인들은 늘 조랑말과 함께 했다. 말의 고장 제주에는 조랑말을 키우며 삶을 이어간 말테우리가 있었다.

엿새 앞으로 다가온 갑오년(甲午年) 말의 해를 맞아 한평생 말을 키우며 살아온 최고령 말테우리 고태오(84·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사진) 할아버지를 만났다.

고 할아버지는 4대째 이어오는 제주의 마지막이자 최고령 말테우리다.

‘테우리’란 소나 말을 돌보는 사람을 일컫는 제주어다. 제주에는 마을마다 소를 돌보는 소테우리와 말을 돌보는 말테우리가 있었다.

소는 말에 비해 동작이 느리기 때문에 비교적 돌보기가 쉬웠지만, 말은 동작이 빠르고 너른 들판에서 자유롭게 달리려는 습성이 강해 잘 다루지 못하면 한라산으로 달아나 야생마가 되기도 하는 등 매우 다루기 힘들었다.

말테우리는 이렇듯 보통 사람들이 다루기 어려운 말을 대신 관리해주기도 하고 자신의 말을 활용해 일감을 찾아 농사일을 돕거나 운반일 등을 했다.

특히 말테우리들은 연자매를 돌리고 밭을 밟는 등 농사를 지을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자동차가 많아지고 다양한 농사용 기계가 등장하면서 말테우리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수입이 줄어들어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고 말테우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결국 말테우리는 제주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고 할아버지는 70년 넘게 말과 함께 살아오며 지금까지 제주 말테우리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고태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마지막 말테우리’라는 제목의 동화책으로도 만들어져 학생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목숨이 붙어 몸을 움직이는 한 말테우리 일은 계속 하겠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고 할아버지의 조랑말 중 ‘으뜸표’라 이름 붙여진 말은 여러 차례 경주대회에 나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제주 조랑말 혈통관리를 위해 행정기관과 연구기관에 조언을 하기도 하는 등 조랑말에 대한 지식을 아낌없이 나누고 있다.

고 할아버지는 “말테우리 일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내가 아는 범위에서 모든 걸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그는 “나는 지금껏 말을 키우는 일만 해왔다. 오랜 세월을 두고 한 길만을 걸었더니 집도 생기고 돈도 생기더라.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참고 견뎌낼 뿐”이라며 “문제가 생겼다 해서 섣불리 방향을 틀지 말고 묵묵히 한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