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 이병도와 금서룡의 우리 역사 왜곡 실체
일제때 이병도와 금서룡의 우리 역사 왜곡 실체
  • 신 상 구
  • 승인 2013.10.1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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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일본 3국 사이에는 역사전쟁과 영토분쟁이 끊임없이 발생해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부분의 강단사학자들이 한국의 상고사인 환국-신시배달국-단군조선의 실체를 유일하게 밝혀주고 있는‘환단고기(桓檀古記)’를 위서로 단정하고 아예 읽어보지도 않아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하는 애국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 직속의 조선사 편수회에 의해 왜곡 기술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고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 역사 왜곡하면 금서룡(1875-1932)과 이병도(1896-1989)가 금방 떠오를 정도로 그들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사 편수회를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데에 앞장섰던 역적들이다. 그리해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차원에서 그들의 만행을 한민족 모두에게 고발해 응징하고자 한다.
금서룡과 이병도가 일제강점기에 한민족에게 저지른 가장 큰 악행은 아마 환국(桓國)-신시배달국-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고조선 이전의 상고사를 송두리째 뿌리 뽑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요동에 있던 한사군을 한반도 북부로 비정하고, 고구려와 발해를 한국사에서 분리해 금나라와 청나라로 이어지는 별도의 만주사로 보는 사관을 지녔으며,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설에 근거, 고대 한반도 남부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을 근대 조선 병탄에 이용하고자 했다.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16년 2개월 동안 조선사(朝鮮史) 편찬 업무에 관여해 오면서 단군고(檀君考)라는 단군 설화설을 만들어 우리 역사 왜곡에 앞장섰다.
그는 1512년 경주 부윤 이계복이 중간한 <삼국유사> 정덕본을 발굴해 영인하며 <단군고기(檀君古記)>에 나오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개찬해 경도제대 영인본 이름을 붙여 각계에 배포했다.
그의 이 같은 개찬작업은 그의 박사학위논문인 단군신화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악용됐을 뿐만 아니라 각계에 널리 유포시킴으로써 지금까지도 일부 <삼국유사> 해설 서적들이 그대로 왜곡 기술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다시 말해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는 상고사 기록에서 환국(桓國)을 환인(桓因)으로 바꿔, 고조선의 입국 사실을 부정하고 환인(桓因)과 환웅(桓雄)을 신화적인 존재로 조작한 것이다.
두계 이병도는 을사오적 중의 한 사람인 이완용(학부대신)의 조카로 식민사학의 원조인 쓰다 소키치(津田 左右吉, 1873-1961)로부터 조작된 국사를 배우고 일제의 조선사 왜곡의 첨병인 이마니시 류의 수서관보가 돼 신석호(1904∼1981)와 함께 ‘조선사 35권 편찬’이라는 거대한 역사왜곡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1934년에 진단학회를 창립했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 문교부장관, 학술원 회장까지 지냈다.
그리해 그는 일제의 <조선사> 편집에 참여해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핵심으로 하는 식민사관 수립 사업에 직접 기여했고, 일제가 유포시킨 식민사관을 해방 후까지 이어주는 중대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 한국 사학계에는 직접, 간접으로 이병도의 제자 아닌 사람이 드물다. 그를 따르는 일련의 학자들을 두계학파라고 칭하는데, 그들은 실증주의 사관을 도입해 일제의 역사 왜곡을 철저하게 따라가고 있고, 하나의 카르텔을 형성해 한국 사학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병도는 죽기 직전, 최태영(1900-2005) 박사의 간곡한 권유를 받고,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우리의 국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반성문을 조선일보 1986년 10월 9일자에 논설을 게재했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던 제자들의 시선은 의외로 싸늘했다. 어떤 이는 ‘노망 드셨네’ 하며 비웃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게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이라 생각하니 그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다행히도 일제강점기에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대종교를 신봉하던 김교헌, 신채호, 박은식, 정인보, 안재홍, 유근, 이상룡, 장도빈 등이 일제의 식민통치와 식민사학에 대항해 목숨을 담보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고 민족사학을 정립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여 단군 이후 면면이 이어져 온 민족혼이 지금까지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도 일제의 식민지 사관과 반도사관에 포로가 돼 우리 역사를 왜곡함으로써 애국 시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일부의 강단사학자들도 이제는 대오각성해 일제의 식민지 사학을 하루 빨리 청산하고, 신교문화사관·대륙사관·민족주의사관·국혼사관·복본사관(複本史觀)에 의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움으로써 지금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국, 중국, 일본 간의 치열한 역사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