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것은 본능이다.
기록하는 것은 본능이다.
  • 임 창 덕/경영지도사
  • 승인 2013.10.0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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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자신의 저서 ‘이기적인 유전자(The Selfish Gene)’ 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전달자에 불과하고 진화의 주인공은 유전자라 했다. 유전자는 자기복제를 위해 우리 몸을 활용하고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의 생존기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 입장에서는 자식을 남긴 사람은 효용 가치가 없다고 하니 참으로 이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122년을 산 잔 칼망 이라는 프랑스 할머니이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죽음을 맞았지만 자식에게 유전자를 남기는 방법으로 영원히 살고 있다. 이기적일 수도 있는 유전자 때문에 말이다. 또 그는 같은 저서에서 유전적 방법이 아닌 모방을 통해 습득되는 문화요소라는 뜻에서 밈스(Meme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몸이 유전자(Genes)를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면 문화는 밈스에 의해 유전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전파하고 공유하려 애쓴다. 일종의 기록하는 것이 단순 현상을 넘어 문화가 된 것이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인간을 호모 ‘스크립투스(Homo Scriptus)’고 하는데 어쩌면 기록하는 자체가 유전자와 같이 영속적으로 살고 싶은 본능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우리 두뇌는 기억하는데 한계를 갖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요즘 외장 메모리와 같은 디지털 기기를 저장 매체로 활용한다. 뇌의 용량 한계를 디지털 기기가 대신해 주면서 부작용으로 디지털 치매라는 말이 생겨났지만 저장의 효율성 면에서는 현명한 선택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무심코 기록하는 일상의 일들은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며, 다음 세대에는 오늘날의 삶의 방식을 연구하는 소중한 사료가 될 수 있다. 또한 세대에 걸쳐 기록된 사항들은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자료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디지털 유품에 대한 상속 요구가 늘고 있다고 한다. 자식이 부모의 살아온 흔적을 돌아보고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볼 수 있다면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지금은 정보통신망법으로 이용자 동의 없이는 타인에게 이용자 정보를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디지털 유산으로 인정하기 위한 법이 발의된 상태라서 앞으로는 고인이 남긴 각종 디지털 자료의 접근이 용이해지고 마치 유전자처럼 상속을 통해 다음세대로 이어갈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것이다.
기록을 남기는 것은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과도 같이 영원히 살고 싶다는 깊은 내면의 메시지인지 모른다. 유전자를 통해 영원히 사는 것처럼 기록을 한다는 것은 삶의 흔적을 영원히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 끝이 있어 영원히 살고 싶은 절박한 마음, 그래서 살아온 흔적은 고스란히 보존하고 싶은 본능이 인간을 기록하게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