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마음의 고향을 그리며
가을에 마음의 고향을 그리며
  • 탁 승 호
  • 승인 2013.10.0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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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섶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반갑다. 올 가을 특히 그렇다. 아마 이번여름 폭염이 유난히 심하고 길었던 때문이리라. 매미소리조차 너무 요란하고 극성맞아 소음(騷音)으로 들렸을 정도였으니까. 예전엔 매미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잊고 스르르 낮잠에 빠져 들곤 했다. 때로는 매미소리 속에 어린 시절 먼지 뽀얗게 날리며 신작로를 달려가는 고향버스의 아련한 추억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올 여름은 무더위로 심신이 지쳐버려 짜증나고 귀찮기만 했던 것 같다.
가을이 왔다. 여름내 찌든 심신의 피로가 절로 사라진다. 어둑한 밤에 한강변 오솔길을 걷는다. 풀벌레, 귀뚜라미 소리에 가을밤이 깊어간다. ‘귀뜰 귀뜰’ ‘찌르르르’하는 소리가 들을수록 정겹고 청아하다. 머릿속이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해져 마음과 영혼도 청정(淸靜)해 지는 듯하다. 오랫동안 잃어버린 무언가 소중한 것을 되찾은 느낌이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삶의 근원에 대해 교감해본다.
학창시절 부르던 여수(旅愁)라는 가곡이 생각난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낯 서른 타향에 / 외로운 맘 그지없이 /나 홀로 서러워 /그리워라 나 살던 곳/ 내 정든 옛 고향~” 가사도 곡도 우수(憂愁)에 어려 있다.
가을의 정취와 함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정야사(靜夜 思)’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牀前看月光(상전간월광) 평상 앞에서 달빛을 바라보니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하얀 달빛이 땅위에 흰서리처럼 깔렸네
擧頭望山月(거두망산월) 머리 들어 산에 걸린 달을 바라보니
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고향생각에 머리가 숙여지네
땅위에 달빛이 서리처럼 깔린 한 밤에 나그네 홀로 산등성에 걸린 달을 바라보다 고향생각에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너무도 추연(?然)하다.
어쩌면 우리 모두 고향 떠난 나그네가 아닐까.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 홀로 왔다 홀로 가는 나그네 신세가 아닐까.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삶과 죽음의 근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생야일편부운기 生也一片浮雲起)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이라(사야일편부운멸 死也一片浮雲滅)고 말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우리들은 이런 근원적인 문제를 잊고 아니 외면한 채 끝없는 탐욕을 쫓아 정신없이 살고 있다. 너무도 외향적인 것, 물질적인 것, 찰나적인 것에만 전심(全心)하다 보니 마음의 고향을 상실해 버렸다. 그러니 마음이 피폐해지고 삶 자체도 삭막하고 살벌할 수밖에 없다. 매일매일 매스컴을 도배하는 숱한 사건사고와 각종 비리들의 근본적 원인도 따져보면 바로 이런데서 연유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사회가 불신과 증오,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고 인터넷과 SNS공간에서 악성루머와 악플이 난무(亂舞)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 영혼의 고향을 잃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가을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천고마비의 계절, 독서의 계절, 결실의 계절 등 말이다. 골프광인 내 친구는 ‘천고마비는 천천히 고개 들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치라’는 뜻이라고 말해 주변에 웃음을 자아낸 적이 있다.
이를 내 나름대로 조금 달리하면 ‘이젠 빨리빨리 보다는 천천히, 잘난 체 말고 겸허히 고개 숙이고 마음을 비우고 살자’ 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저마다 자기주장을 외치며 목청을 돋우는 일보다 오히려 겸허한 자세로 마음의 고향을 찾아 자신의 내면을 순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고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가을이 깊어간다. 추야장(秋夜長)에 독서를 하든, 달빛 아래서 명상에 잠겨보든 아니면 어디로 훌쩍 여행을 떠나보자. 가을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우리 내면의 깊은 데서 울려나오는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우리들 마음이 맑고 투명해지면 우리사회도 맑고 향기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 우리들 마음에 사랑이 넘치면 그 사랑의 물결이 우리사회를 덮을 것이다.

이 글은 선진사회 만들기 길라잡이 ‘선사연’의 홈페이지(www.sunsayeon.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