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문화’와‘마당문화’
‘광장문화’와‘마당문화’
  • 신아일보
  • 승인 2008.06.1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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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연 충 부산국토관리청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촉발된 촛불집회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집회 참가자들의 면면이 조금씩 바뀌고 주장하는 내용도 이것저것 뒤섞이면서 순수성을 잃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더 걱정스럽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민 모두가 공유해야 할 시청앞 광장은 밤마다 촛불과 시위행렬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6월3일이 새정부 출범 100일째이었으니 정상적이라면 시청앞 광장은 화려한 축하공연의 무대가 되었을 터이다.
시민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넘치고 광장은 2002년 월드컵때에 못지않는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청계천과 더불어 어렵사리 시민의 곁으로 돌아온 그 시청앞 광장이 갈등과 대립의 접점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원래 서구의 광장은 도시의 중심축에 자리하여 물자와 정보가 교류되는 소통의 장이었으며,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축적되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유럽 각국을 다녀보면 꼭 대도시뿐만 아니라 시골의 작은 도시나 마을에도 어김없이 앙증맞은 광장이 곳곳에 터를 잡고서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규모는 결코 크지 않지만 광장의 역사적 가치와 품격, 그리고 시민들이 광장에 대해 갖고 있는 프라이드만큼은 대단하다.
런던의 트라팔가광장이나 마드리드의 마요르광장, 또 로마의 트레비분수광장이 넓어서 유명한게 아니다. 서구에서 광장은 곧 도시의 역사이고 개성이다.
이에 비하면 대체로 동양권국가에서는 광장이 흔치도 않았거니와 그 기능이나 효용 자체가 서구와는 사뭇 다르다. 시민들의 곁에 녹아있는 공간이 아니라 체제나 국력의 과시용으로 조성된 경우가 많다.
남북길이 880m, 동서폭 500m에 달하여 100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천안문광장만 하더라도 휑뎅그레하니 크기만 할 뿐이지 시민이 편하게 접근하여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이 아니다. 우리의 옛 여의도광장도 마찬가지다. 말이 광장이지 1.3km길이에 폭 300m의 넓은 아스팔트 포장도로에 불과하였다. 1년에 몇 차례 국가행사나 퍼레이드가 벌어졌을 뿐 애당초 시민을 위한 휴식처가 아니었고 도시문화공간과도 거리가 한참 멀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마을마당이 오히려 서구의 광장에 가깝다. 요즘엔 보기 드물어졌지만 옛날 시골마을에는 대개 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는 널찍한 공터인 마을마당이 있었다.
곡식을 말리기도 하고 타작마당으로 쓰기도 했다. 대보름 달집놀이나농한기 풍물놀이의 무대이었고 연날리기, 줄다리기, 씨름 등 세시풍속이 비롯된 곳이기도 했다. 북청사자놀이나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 등 마당놀이도 여기서 연유한다.
주민친화적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서구의 광장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서구의 광장은 대개 주변이 관청이나 상점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데 비해 탁 트인 우리의 마을 마당쪽이 오히려 더 개방적이고 다양하게 활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공간을 비워놓고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쓰는 지혜가 탁월했었다. 대청마루가 그렇고 온돌방이 그렇다.
대청마루는 손님을 맞는 객청인 동시에 주부들이 다듬이질이나 바느질을 하는 작업장이며 아이들의 놀이공간이기도 했다. 서구의 주택은 침실이 있고 거실과 식당도 따로따로 있지만, 우리의 온돌방은 밥상을 놓으면 식당이요, 서탁을 펼치면 서재가 되고 바둑판이나 찻잔을 차려놓으면 거실이 된다.
차곡차곡 개어두었던 이부자리를 펼치기만 하면 또 침실이 되니 얼마나 효율적인 공간 활용인가? 이런 지혜를 되살린다면 우리의 도시 광장도 문화예술의 향기가 넘치고 이웃간의 따뜻한 정이 흐르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가꾸어나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몸살 앓는 광장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다같이 열린 가슴으로 이성적인 대화와 논의의 마당을 펼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