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신뢰 프로세스를 적극 추진하자
한·일 신뢰 프로세스를 적극 추진하자
  • 김 강 정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 승인 2013.08.2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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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 살 무렵 아버지로부터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등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심지어 우리의 말, 성과 이름까지도 말살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어린 마음에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언제부터인가 일본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갔다. 1970년대 일본을 여행하면서부터 사람들의 몸에 밴 친절과 남을 배려하는 행동,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자세, 질서를 잘 지키는 모습, 도시와 시골 어디나 깨끗하고 잘 정리된 환경 등과 마주쳤다. 어느덧 배울 점이 참 많은 국민이라는 느낌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95년 8월15일 당시 무라야마 일본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반가웠다. 일본이 믿을 수 있는 이웃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와 야소 부총리 등 현 일본정부 각료들의 그릇된 역사 인식과 망언이 여기에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그들은 위안부 문제 등 이미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사과한 역사적 사실마저 무시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진 게 없다”는 수준 이하의 억지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우리 민족의 옛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지만, 전후 처리 모습은 정반대였다. 나치독일은 600만 유대인들을 잔인하고 악독한 방법으로 학살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인종청소였다. 그런데도 지금 독일은 피해 당사국인 이스라엘과 우호관계를 맺고 강한 협력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이 2차 대전 때의 나치 만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70년 겨울 빌리 브란트 당시 독일 총리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유대인위령탑 앞에서 차가운 돌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나치독일의 만행을 사죄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치의 만행에 대한 독일의 반성과 사죄의 진실성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해주었다. 그의 무릎 꿇은 모습은 무한한 감동을 주었다. 진실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었다. 현 메르켈 총리도 선거유세를 미루면서까지 유대인 희생자를 추모하며 사죄의 행보를 잇고 있다.
독일은 지금도 끊임없이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고, 피해자를 찾아내 배상한다. 독일은 영원히 역사에 책임을 지는 성숙한 자세를 지켜오고 있다. 이에 비해 현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틈만 있으면 책임을 회피하려고 발버둥친다. 참 비열한 모습이다. 독일과 극명하게 대조적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잔학한 가해자였다. 진정한 반성과 사죄가 없다면 영원히 불신과 경계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은 좋든 싫든 숙명적으로 이웃이다. 이웃 일본이 믿을 수 없고 불편하다고 해서 한반도를 아시아에서 떼어내 다른 대륙으로 옮길 수는 없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믿지 못해 불편하고, 위험에 빠지기 보다는 서로 믿고 도움을 주는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그것만이 서로에게 평화와 발전적인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140년 동안 네 번이나 큰 전쟁을 치르고도 오늘날 평화와 깊은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했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점차 힘을 얻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는 ‘한·일 신뢰프로세스’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두 나라 젊은이들이 독일과 폴란드처럼 역사 공유의 폭을 넓히도록 해야 한다. 미래세대가 지도자로 성장하면 역사 왜곡과 부정으로 인한 갈등과 소모전은 자연스럽게 막을 내릴 것이다. 미래세대의 역사 공유와 지속적인 교류는 상호신뢰와 협력 바탕 위의 밝은 미래를 여는 열쇠다.
진행중인 한·일 이해증진 프로그램들도 전면 재점검, 보완해서 속도를 내야 한다. 한·일 신뢰프로세스는 당장 서둘러 추진하되 아베 정부를 뛰어넘는 더 큰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 아베 정권이 일본 정치의 전부가 아니다. 어차피 한시적이다. 일본에는 아직 때묻지 않은 젊은이는 물론 양식 있는 지도자와 시민들이 많이 있다. 한국과 일본 두 이웃이 신뢰를 바탕으로 우호협력관계를 깊게 구축하면 할수록 두 나라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다. 한·일 신뢰프로세스는 당장 필요하다.

 

이 글은 선진사회 만들기 길라잡이 ‘선사연’의 홈페이지(www.sunsayeon.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