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堯舜(영양)’ 영양고을… 아저씨 경찰서장
‘堯舜(영양)’ 영양고을… 아저씨 경찰서장
  • 신아일보
  • 승인 2008.05.2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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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준 영 / 민생경제연대 상임대표
내가 영양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 곳이 산간오지라는 것과 80년대 서울 외신기자 시절부터 안면을 익힌 정치인 이재오 선배의 고향 땅이라는 것, 청록파 시인 조지훈 선생의 고향, 그리고 영양의 특산품인 고추가 마치 과일처럼 맛있다는 것 정도이다.
자영업 중소기업 경영인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민생경제연대를 출범시키면서 아주 소중한 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들이 김사룡, 김세권, 구선회, 김진시 선생이다.
이 분들이 바로 재경영양분들이다. 재경영양군 향우회 전회장인 김사룡 선생은 우리 민생경제연대 상임고문이고, 향우회 사무국장인 김세권 선생은 중앙위 의장, 향우회 총무를 맡고 있는 구선회 선생과 김진시 선생은 각각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영양군에서 5월 17-18일 ‘영양 산나물 축제’ 행사를 갖는다는 말을 듣고 우리 민생경제연대 핵심간부들과 함께 이 행사에 참여하는 기회를 잡아 즐거운 마음으로 영양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지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영양 읍내에 차가 도착했다. 둘러보니 읍내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형 지형이다. 하늘이 동그랗게 보일 정도다. 3층 이상 건물이 눈에 안 띤다. 아늑한 분위기가 마을 전체를 감싼다. 소박함이 물씬 배어나서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영양군은 2만 명에 약간 못 미치는 인구에 면적은 서울의 1.5배에 이른다고 한다.
점심식사 시간이다. ‘영덕식당’에 들어가 산채나물에 토종한우 육회가 얹힌 그릇에 영양의 명물 영양고추장을 넣은 비빔밥이 꿀맛이요 별미 중에 별미다. 점심을 달게 먹고 산나물 축제장에 나가본다. 장터가 온통 산나물로 넘쳐흐른다. 값도 싸다. 일행 모두가 비닐자루에 가득 채워도 1만원 안팎인 산나물 사기에 여념 없다. 인심 후한 이곳 정취가 신기하고 즐겁다.
서정 시인으로써 한국현대문학계의 거두인 조지훈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주실마을’을 찾았다. 마을입구에서 조현숙 선생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재경영양 출신 인사들 사이에선 조 선생을 ‘영양지킴이’로 부를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분이라고 한다. 조 선생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조지훈선생 기념관과 생가를 둘러보았다. 주실마을은 이조시대 개혁파의 거목 조광조 선생이 낙향하여 뿌리를 내린 곳이라 한다. 마을 전체가 ‘문향’(文香)이 흐르듯 곱고 아늑하다. 게다가 사람 사는 온기가 넘쳐서 좋다.
마을 주차장이 외지에서 온 차량들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차가 드나드는 길목이 교통흐름에 막힘이 없다. 자세히 살펴보니 주요 길목에 자원봉사 복장을 한 사람들이 열심히 자기 몫을 다하는 모습이다. 비록 세련되거나 능숙해 보이지는 않지만 열심히 정성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다음 행선지인 영양 고추유통공사로 향했다. 매콤 달콤한 고추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영양 고추는 전국 어느 생산지보다 실하고 맛이 뛰어나 특등품 중에서 특등품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생산 공정이 청결하여 믿고 먹는데 안심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한다는 믿음을 주었다. 이곳에서도 일행들은 영양고추는 타 지역 고추와는 달리 모두 일월산을 행해 서 있다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너도 나도 고추 사재기(?)에 나선다. 마치 흥겨운 잔칫집 분위기다.
우리 일행은 행사 참가를 마치고 찰당골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일월산 자락에 위치한 찰당골은 영양읍 내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두메 산골이다. 한 여름 밤에 반딧불이가 무리지어 날아다닐 땐 자기가 영화 속의 피터팬이라도 되어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한다. 우리 일행들을 위해 숙소의 주인아주머니께서 산골 약초를 뜯어 먹고 자란 흑염소를 잡아 저녁식사 준비에 분주하다.
여장을 풀고 잠시 한 숨 돌리며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어느 점잖은 중년 아저씨 한 분이 찾아와 인사한다. 영양경찰서 서장 김광식 총경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나는 그 순간 내심 당혹스러웠다. 우리 일행 가운데는 큰 권력을 쥐고 흔드는 고관대작이 계시는 것도 아니요, 떵떵거리며 사는 갑부가 있는 것도 아니며, 사회적으로 유명인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서장님이 무슨 일로 이곳 깊은 산골까지 일부러 시간 내어 찾아온 걸까?
이런 나의 궁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영양 산나물 축제행사에 3백여대에 이르는 관광버스가 찾아왔는데 이들 방문객들에게 영양을 알리기 위해 한 곳 한 곳 찾아다니면서 발로 뛰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영양 세일즈맨’이었다.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는 우리들의 권유를 마지못해 뿌리치며 다음 일정을 위해 바삐 발걸음을 서두르면서 그 분이 남기고 떠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 영양은 지금 중국의 요순(堯舜)시대에 살고 있어요” 굳이 임금이 누군지 몰라도 백성들이 평안한 세상을 구가한 동양식 유토피아가 바로 중국 요순 임금 시대가 아니었던가! 정치의 정곡을 꿰뚫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도착하여 지금껏 경찰복장을 한 사람을 발견한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사 기간 동안 평화로운 질서가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특이 했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사회 질서를 이끌어가는 리더야말로 진정한 리더라는 메시지였다. 또한 경찰이란 권위에 가득 차 있고 민초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크게 바꾸는 계기를 그는 만들어 주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산간오지로 알려진 영양 땅에 부임하여 요순시대의 꿈을 실현하여 보고자 분투하는 영양 경찰서 서장 김광식 총경을 통해 현장에서 소리 없이 발로 뛰는 국민의 공복(公僕)들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포진되어 있음을 확인하면서 이 나라가 쉽게 흔들리거나 크게 후퇴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든든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또한 나의 이번 영양 여행은 배움과 깨달음이 반드시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높은 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값진 여행이었다.
이제 우리 민생경제연대 회원 전체는 ‘김광식 팬클럽’의 열렬한 회원이 되어버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김광식만 같아라!”
내가 이번에 영양을 갔다 오면서 이명박 정부와 공직사회에 던지고픈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