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의 수난시대
‘우공’의 수난시대
  • 신아일보
  • 승인 2008.05.2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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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연 충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
‘호시우보’와 같은 성숙된 자세가 절실한 때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나라가 온통 어수선하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먹거리에 관한 문제이니만큼 누구나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하겠지만, 핵심이슈가 되고 있는 광우병에 관한 부분은 근거 없이 부풀려지고 있는 면이 적지 않은 듯하다.
과학적 근거나 실증적인 통계자료에 입각하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을 앞세운 막연한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는 형국이다.
오랜 세월 우리 곁을 지키며 애환을 함께해온 소인데, 어쩌다가 하루 아침에 이렇게 애물단지 신세가 되어버렸는지 안쓰럽기만 하다.
소가 어떤 동물인가? 농경사회에서 소는 우리네 삶과 뗄래야 뗄수 없는 가족 구성원의 하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 묵묵히 논·밭을 갈고 수레를 끌며 일을 거들다가 마침내는 그 육신까지 바쳐 우리의 밥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옛부터 소는 농가의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서 부와 풍요, 그리고 힘을 상징하였으며 인내와 근면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느릿느릿 풀을 뜯거나 한가롭게 누워있는 소의 모습은 곧 농촌의 여유와 평화를 의미하였고, 해질 무렵 고삐를 끌고 들녁을 가로질러 돌아오는 농부의 얼굴에는 하루 일을 끝낸 만족감이 피어오르기 마련이었다.
소는 순박하고 근면하며, 우직하면서도 성실하다. 또한 소에게서는 긴장감이나 성급함을 찾아볼 수 없다. 소의 정서는 여유와 평화, 그리고 한가로움과 통한다. 사람으로 치자면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너그러운 대인(大人)의 풍모와 유유자적하는 은자(隱者)의 이미지이다.
소는 12간지 중 두번째인 축(丑)에 해당하는 동물인데, 이렇게 된 데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진다.
옥황상제가 동물들을 불러 모으면서 선착순으로 순서를 정하기로 했는데, 쥐란 녀석이 내내 소 잔등에 올라타고 가다가 골인 직전에 뛰어내려 1등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소의 너그러우면서도 우직한 면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성정이 이렇다보니 본래 소는 서로 잘 다투지 않는다.
최근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성행해온 소싸움이란 것도 실은 사람들이 멍석을 깔아놓고 억지로 싸움을 붙이는 놀이판일 뿐이다.
게다가 소는 싸우더라도 뒤끝이 깨끗하다. 상대가 머리를 돌리고 꽁무니를 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도망가는 상대를 뒤 쫓아가 치명타를 가한다든지 넘어진 상대를 눌러 짓밟는 따위의 치사한 행위는 하지 않는다.
물론 스페인의 투우는 사정이 좀 다르긴 하다. 스페인 투우에 동원되는 소는 원래 성질이 고약한 야생소로서 농작물을 망치고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기 일쑤였다고 하며, 이를 퇴치하기 위한 노력이 투우 경기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절에 가면 흔히 대웅전 벽면을 빙 둘러 소를 그려놓은 벽화를 볼 수 있다.
소를 찾아서 고삐를 채우고 길들이며 결국에는 사람과 소가 일체가 되는 과정을 단계별로 표현한 ‘십우도(十牛圖)’이다.
이때의 소는 사람이 갖고 있는 불성(佛性)을 상징한다.
말하자면 불교 수행의 본질을 소를 찾아 길들이는 것에 비유한 셈인데, 소를 찾는다는 뜻의 심우(尋牛), 소를 놓아버린다는 방우(放牛), 소를 길들인다는 목우(牧牛) 등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나온 용어들이다.
또 전통적으로 풍수에서는 소가 비스듬히 누워있는 형상인 산세를 와우혈(臥牛穴)이라 하여 명당으로 친다. 그 어디에도 소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소가 이토록 논란거리가 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호시우보(虎視牛步)’란 말이 있다.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듯이 사물을 날카롭게 보되, 행동은 소처럼 진중하게 하라는 말이다.
묵묵하게 자기 일을 다 하는 성실함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작금의 쇠고기 파동을 보면서 이 말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무턱대고 분위기에 휩쓸려 부화뇌동할게 아니라 무엇이 사태의 본질인지, 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슬기로운 길인지 냉철하게 판단한 연후에 의연하게 행동하는 성숙된 면모가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