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만하면 뭐하나 지키지도 못할 ‘국보’
지정만하면 뭐하나 지키지도 못할 ‘국보’
  • 신아일보
  • 승인 2008.02.1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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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세 열 주필
“숭례문 소실 우리 모두의 책임, 앞으로 최대한 역사성을 살려 복원하는 게 우리가 속죄하는 길일 것이다.”

예로부터 회록지재(回祿之災)라는 말이 있다 ‘받은 녹(祿)은 되돌리는 재난’이라는 뜻인데 재난 중에 최악의 재난 이라하겠다. 천지자연으로부터 받은 녹을 천지자연으로 되돌리는 재난이니 문명을 향유하려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재난일 수밖에 없다. 회록지재란 예부터 화재(火 災)를 일컫는 아언(雅言)이었다.
처참하고 가슴이 미어진다. 600여년은 의연하게 지켜온 대한민국의 상징인 숭례문(崇禮門,남대문) 이 잿더미가 됐다. 참으로 허탈감과 상실감을 일루 말할 수 없다. 화마는 국보 1호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존심 까지 삼켜 버렸다. 후대에 반드시 전해야 할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죄책감에 어깨를 짓누른다. 우리민족과 우리문화의 기품과 위용 당당함이 불길에 사그라진 것은 보는 느낌은 비통함 그 자체다.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늦은 밤도 아닌 시간에 지척에 남대문 경찰서가 있고 바로 이웃이 소방서다. 서울의 상징이 무너져 내린 것은 국가가 나라의 모습을 제대로 갖췄다고 할 수 없다.
문화유산을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그것은 특별히 잘 보존하겠다는 국민적 다짐이다. 그런데 보물도 아닌 국보 그것도 제 1호가 허망하게 화마로 인해 모습을 감췄다. 세계 11대 경제 대국 등 선진국이라고 뽐내는 나라가 원시적인 화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천재지변을 물론 이고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등 전란까지 이겨낸 숭례문이 우리들의 부주의와 무관심 속에 불과 6시간 만에 자취를 감췄다는 것은 전통과 역사조차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이 시대에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숭례문은 아름다움으로 치면 조선 초기에 건설한 장엄미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역사성으로 보면 국내 성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훈민정음과 석굴암 팔만대장경과 함께 세계인 앞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문화유산은 허무하게 소실시키는 것이다. 서울 숭례문은 문화재보호법이 공포되고 1962년 우리 손으로 국보 1호로 자리 매김 되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36년 동안 강점 하면서 보물로 지정했다고 해서 논란도 있었다. 국보1호는 그 나라의 상징이기 때문에 혹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조각인 석굴암 석불이나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왔다. 지금은 국보1호 2호 하는 번호를 없애려는 문화재청 방침에 논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논쟁보다는 어떻게 하면 모든 문화재를 온전하게 잘 보존 해 후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인지를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정 문화유산 가운데 목조 문화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86년 보물 제 476호였던 금산사 대적광전이 불탄 후 문화재청은 화재예방책으로 불타는 것을 방지하는 소위 방연제를 개발해 연차적으로 중요 목조 문화재에 도포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05년 4월 강원도 양양일대의 산불로 낙산사가 화재피해를 봐 원통 보전을 비롯한 건물 14동이 전소되고 심지어 보물 479호 인 낙산사 동종도 불에 소실됐고 2006년 창덕궁 문정전 화재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의 서장대 화재가 방화에 의해 일어났다. 언제 어디서 또 문화재가 소실될지 걱정이 앞선다. 이후 문화재 당국에서는 대각도로 보존 대책을 마련하고 복원을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경험이 있으면서도 어떻게 국보 1호인 남대문이 타 버리도록 대책하나 없었는지. 하다못해 방연제라도 뿌렸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는 관리 경비 인력을 강화하고 일반인 출입을 일정부분 제한할 수 밖에 없다 .
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책은 우리국민 누구나가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이 기회에 뼈저리게 체득하는 일이다. 문화재는 우리세대만 향유하는 것이 아니다. 자손만대에 넘겨주어야 할 민족 공동의 자산이라는 사실에 공감해야한다. 문화재의 경우 숭례문처럼 훼손 우려 때문에 일반 건물과 같이 적극적인 진화를 할 수 없는 만큼 화재예방이 더욱 중요하다. 지난 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중요 모조 문화재 100곳 가운데 소화전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30곳 이상이고 기본적 소화시설인 소화기조차 없는 곳도 있었다.
우리나라 문화재 관리 현주소가 이렇다니 한숨만 나온다. 이 같은 처지에서 추진되고 있는 방지 시스템구축 사업은 쥐꼬리만한 예산으로 인해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지난해 국비와 지방비를 합해 15억원의 예산으로 해인사 봉전사 무위사 낙산사 4곳에 수막설비와 경보시설을 설치한데 이어 올해는 예산 18억원이 확보돼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이 숭례문 복구 기본방침부터 내놓은 것은 너무 서두르고 허풍스럽다는 느낌이다. 당장 관계당국이 숭례문 관리상 허점과 화재 원인 등을 제대로 밝혀내는 게 우선이다. 그에 따른 보완 대책을 세우는 일에 힘을 쏟은 뒤 복구계획을 제시하는 게 순서다. 비록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기는 하지만 이제 다른 문화재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화를 겪지 않도록 대비책이 절실하다.
지금 숭례문은 흉측한 몰골로 우뚝 서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무책임을 꾸짖는다. 일본이 산재된 문화재보호법령을 한데모아 문화제보호법을 만들고 매년 1월 26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정해 1955년부터 방재훈련을 실시하고 있음을 참고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5000년 문화민족’임을 자랑해왔다. 문화재는 잘 보존해 후손에 넘기는 문화사랑 하는 민족으로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폐허가 된 숭례문은 최대한 역사성을 살려 복원하는 게 우리가 속죄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