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있어야 ‘창조’가 가능한데...”
“정신이 있어야 ‘창조’가 가능한데...”
  • 이은지 기자
  • 승인 2013.03.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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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 ‘피로사회’ 저자 한병철 베를린 예술대 교수
“우리에게 시간은 ‘노동의 시간’, ‘소비의 시간’이 됐습니다.

노동과 소비를 떠나야 시간에 향기가 나는 거에요” 저서 ‘피로사회’로 지잔해 한국 사회를 달군 재독 철학자 한병철(55) 베를린예술대 교수가 ‘왜 나는 늘 시간이 없고, 시간에 쫓길까, 그토록 바쁘게 지냈음에도 어째서 남는 것이 없을까?’라는 의문에 천착했다.

지난 15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되는 ‘시간의 향기’는 그 결과물이다.

“바쁘게 왔다갔다하는 걸 보고 정신이 없다는 표현을 씁니다.

정신이 있어야 ‘창조’가 가능한데 우리는 정신이 없이 살다 보니 피곤하고 마비가 되는 겁니다” ‘시간의 향기’는 성과주의가 만연한 사회가 현대인이 스스로를 착취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 ‘피로사회’와 궤를 같이한다.

‘나는 일한다, 나는 활동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근대 이후를 지배해온 가치관이었다면, 한 교수는 책을 통해 ‘나는 일하지 않는다, 나는 멈춘다, 고로 존재한다’로 가치관을 전도시킨다.

‘나이를 먹는다’가 아닌 ‘나이가 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라고 역설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시간을 단순히 ‘소비’했다는 것이고 ‘나이가 든다’는 사색하는 시간이 ‘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시간의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나를 치료하는 게 해결책이 아니에요. 사회를 치유해야 하는데 ‘네가 문제가 있다’면서 ‘너를 치유하라’는 것은 사회적 교활입니다.

그런 ‘힐링’은 나를 죽이는 ‘킬링’이 됩니다” 결국 중요한 건 ‘개인’이 아닌 ‘우리’가 된다.

“개인만 생각하니까 연대가 안 되는 겁니다.

연대가 안 되니까 우리가 피로한 겁니다”며 활동적 삶 중심의 가치관을 사색적 삶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지하철을 타면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어요. 스마트 폰이 있으면 자유로워진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걸 보는 순간 그건 족쇄가 아니라 ‘안쇄(眼鎖)’가 되는 겁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에 비유하면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면서 좋아하고 있는 거에요” 한병철 교수는 ‘투명사회’ ‘폭력의 위상학’ 등을 내놓으며 독일 철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독일에서는 그를 ‘걱정하는 철학자’ ‘항상 기분이 안 좋은 철학자’ 등으로 부른다.

“폭력이 없는 에세이들은 사회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없습니다.

힐링이 아니라 킬링해야합니다.

있던 것을 죽여야지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겁니다”는 한 교수는 디지털 문화로 인해 변하는 정치 형태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