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열의 칼럼]나이를 묻는 버릇
[오세열의 칼럼]나이를 묻는 버릇
  • 신아일보
  • 승인 2007.12.1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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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나이를 묻지 않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

영어의 January (1월)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문(門)의 수호신 야누스(Janus)에서 유래했다.
‘야누스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Januarius가 한해를 여는 Jamuary로 바뀐 것이다. 이는 문이 한쪽 끝임과 동시에 다른 한쪽의 시작을 의미 하는데 근원을 뒀다. 이처럼 문이 시작을 나타내는 바탕에서 야누스는 모든 사물과 계절의 시초를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됐다.
고대 로마인에게 야누스는 하늘문을 열어 아침이 밝아오게 하고 황혼이 오게도 하는 신이였다. 야누스의 두 얼굴은 앞과 뒤를 살피고 과거와 미래를 함께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였다고 전한다.
다시 새해를 맞이한다. 머문듯 가는것이 세월이라고 했지만 사람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되돌아오기를 반복 한다. 사실 날짜의 회귀 자체는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세시(歲時)가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소망을 안고 또 새로운 각오로 새 출발을 한다.
사람들이 신년사도 어김없이 나온다. 그러지 않으면 절대로 안되는 것처럼 넘치는 희망의 메시지를 마다할 이유가 없으나 대개 말잔치에 그쳐온 터여서 별로 미덥지기 않다. 그런데도 인간은 항상 훌륭한 생각만 하는게 아닌가보다. 새해라는 말을 그렇게 자주 사용하면서도 아직도 새롭게 바꾸지 못하는 생각들이 많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과감한 생각을 사람의 나이를 볼 때에는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나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참으로 이중적이다. 스스로는 늙어간다고 서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몇개월 누가 먼저 태어났나 따지면서 아랫사람 지배하려고 하는 바보짓을 못 버리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이를 시대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농경시절에는 나이가 삶의 지혜를 짐작케 하는 한 지표였을 수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나이 하나만으로도 젊은이들에게 공경을 요구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떤가.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첨단 제품이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아무 쓸모없이 전락해 벌리는 정도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 해도 오늘이나 내일에는 그 지혜를 인정받기 어려운 시절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알게 모르게 인지하고 나이 먹는것을 걱정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나이가 공경의 대상이 되던 옛날의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초면임에도 나이를 물어보고 상대 나이가 ‘어리다’싶으며 바로 어른 행세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깨나 먹은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나이를 따지면서 시대를 지배하려고 하는 경우를 본다 세상에 우리처럼 ‘나이’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흔치 않을 것이다. 우리의 나이 문화에 무슨 문제가 있나. 어떻게 보면 ‘동방예의지국’의 전통으로 노인 공경과 이어져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정보 산업사회에서의 국가 경쟁력은 새로운 지식의 생산과 유통속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정보의양도 중요하지만 같은 양의 정보라고 해도 사회적으로 정조유통 속도가 빠르면 새로운 아이디어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정보의 해택도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사람 간에 의식하는 장벽이 많으면 정보의 교류는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 없다.
나이를 따지는 우리의 문화도 우리가 만든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능력으로 나이를 가려버린 인사는 미국 곳곳에 많다. 세계적인 학자·경제계와 공직자의 많은 원로들이 왕성한 활동을 통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은 여건이 되면 나이와 관계없이 일하고 은퇴하면 자원 봉사 등에서 또 다른 생의 의미를 찾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조로(早老)하는 사회다. 능력과 상관없이 “나이가 그쯤 됐으면 후진에게 길을 열어주지”라며 등을 떼민다. 기업이나 공직에서 떠나올 나이가 너무나 이르다.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직장인의 조기퇴출 ‘행시 몇 기 이상 일괄사표’식으로 이루어지고 하는 공직 사회의 구조조정도 웃지 못할 풍속도다.
이런 관행이 사회의 신진 대사와 맞으면 별 문제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그렇게 빨리 일손을 놓아도 될 형편이 아니다.
통계청장을 지낸 오종남 국제통화기금 이사가 쓴 『한국인 당신의 미래』를 보면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사회(65세 이상이 인구의 7%이상)에 진입했고, 2019년에는 고령사회(14%), 2026년에는 초 고령사회(20%)가 될 전망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다. 이대로 가면 젊은이 한사람이 노인 한사람을 부양 하느라 허리가 휘는 시대가 머잖아 올 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는 60세 정년을 맞아 퇴직하는 사원들을 종전보다 낮은 임금으로 전원 재고용 했다. 사회의 고령화에 따라 조만간 닥치게 될 노동력 부족에 대비하고 숙련 인력의 경험을 젊은이에게 전수하기 위해서라 한다. 우리사회도 도요타와 같은 지혜를 발휘해서 소중한 능력들이 사장되지 않고 경제의 동력이 되도록 해야한다.
나이를 따지는 우리의 문화도 우리만의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는다.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나이를 묻지 않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