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광역단체장들은 국민을 두려워하라
기초·광역단체장들은 국민을 두려워하라
  • 이 택 용
  • 승인 2012.09.0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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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부터 420년 전에 경상도 울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1539~1609)선생은 울진의 마암(馬巖)들판을 바라보면서 “땅의 성쇠(盛衰)는 백성에 달려 있고, 백성의 고락(苦樂)은 고을 수령에 달려 있으니, 백성들이 편안히 살아야 영토를 보전할 수 있고 수령이 백성을 괴롭히지 않아야 백성이 그들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법이다.

”라고 고을수령의 책무를 강조했다.

그는 본관이 한산(韓山)이며,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종남수옹(終南睡翁)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이색(李穡)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내자시정(內資寺正) 이지번(李之蕃)이며, 어머니는 의령 남씨(宜寧南氏)이다.

어려서부터 작은아버지인 이지함에게 학문을 배웠다.

문장에 능하여 선조임금 때 문장 8대가의 한 사람으로 불렸으며, 사마시에 입격하고 문과 급제하여 우·좌의정과 영의정을 역임하고, 울진의 평해 유배시절에는 백성을 보듬어주는 수많은 시문을 남겼다.

그는 마암기(馬巖記)에서 “울진의 평해 지역에는 온통 산만 있을 뿐이고 너른 언덕이나 들판이라곤 없는데, 유독 관아의 소재지 안은 토지가 조금 넓고 논이 많으며 맑은 시내 한 가닥이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들판을 가로질러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농민들이 논에 물을 대면서 모두 이 시내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마암의 들판인데, 들판을 마암이라고 이름을 한 것은 어째서인가. 들 남쪽에 구불구불 동쪽으로 달려 마치 말의 형상을 하고 있는 산이 있으니, 이 때문일 것이다.

들판을 둘러싸고 민가가 많이 있으며 개울과 도랑, 논밭의 두렁들이 시야(視野) 안에 종횡으로 엇갈려 들어오는데, 쟁기질을 하는 사람, 김을 매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화답하는 사람, 땔나무를 하는 사람, 가축을 치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끊이지 않으니 의연히 태평(太平)의 기상이 있다.

게다가 100척 높이의 푸른 솔이 길을 끼고 줄지어 서서 마치 관을 쓴 장부가 좌우로 시립(侍立)해 있는 형국을 하고 있으며, 교목(喬木)과 고목이 숲을 이룬 채 긴 시내를 에워싸고 있는데 바라보면 그 길이는 4, 5리쯤 될 듯하다.

매양 가을이 저물어갈 때면 들판 가득한 벼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짙푸른 큰 솔에서 서늘한 솔바람 소리가 들려오며 우거진 탱자 숲에서는 황금빛 탱자 알이 땅에 가득하니, 참으로 이곳의 빼어난 경관이라 하겠다.

아, 땅의 성쇠는 백성에 달려 있고 백성의 고락은 고을 수령에 달려 있으니, 백성들이 편안히 살아야 영토를 보전할 수 있고 수령이 백성을 괴롭히지 않아야 백성이 그들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탐관오리가 오면, 정령은 번다하고 형벌은 가혹하며 조세 징수는 날로 급박하여 아전들이 호통을 치고 다니고 포승에 묶인 백성들이 옥에 가득하니, 닭과 돼지가 남아나지 않고 늙은이와 어린이들은 모두 흩어져 잡초만 가득한 채 들판이 황폐하게 된다.

그러니 백성들이 어느 겨를에 자기 집을 보존하고 이 땅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는가. 따라서 쟁기질, 씨뿌리기, 김매기 등을 제때에 어김없이 하면, 비록 홍수나 가뭄, 흉년 따위를 만나더라도 재앙이 되지 못하며, 명절이 오면 술을 거르고 닭을 삶아 날마다 즐겁게 노는 것이 모두 수령의 은덕이 아님이 없음을 알겠다.

아아, 이 고을이 생긴 이래로 이곳에 부임해 온 수령이 얼마나 많겠는가. 어떤 이는 어질고 어떤 이는 어리석고 어떤 이는 청렴하고 어떤 이는 탐학하며, 아무개는 우리를 편안케 했고 아무개는 우리를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게 했다는 것은 반드시 한 고을의 공론이 있으며, 마암의 어리석은 백성들 또한 가슴 속에 맑음과 흐림의 평판을 내리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니,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마암기를 지어 이후 이 고을에 수령으로 오는 이의 경계로 삼아야한다”라고 기록했다.

이처럼 오늘날 지자체장들이 시민을 어리석게 보고 시민을 위한 정책을 펴지 아니하면 반드시 후대 역사에서 비판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지자체장들은 시민과 고락을 함께하는 등 존경받는 좋은 지자체장으로 남았으면 한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에 목민관(牧民官)의 책무이자 의무이다.

혹시 어느 소 농민들이 참여하고 발의하여 선정비(善政碑)라도 세워 줄 수 있을지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