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인성과 합리적 지성 위한 교육 시급
따뜻한 인성과 합리적 지성 위한 교육 시급
  • 탁 승 호
  • 승인 2012.08.0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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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학교에서 수업태도가 불량한 여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학생과 50대 여선생이 서로 머리채를 잡고 몸싸움을 했다.

다른 학교에서는 남학생이 교사에게 욕설하고 폭행했다.

여중생들이 어린이들의 다리를 불시에 걷어차 꺼꾸러지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충격적인 동영상이 보도됐다.

청소년교육의 문제점이 정말 심각한 상황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에 만난 한 고등학교 퇴직교사는 ‘학생들이 선생알기를 우습게 알고 수업분위기가 엉망이어도 마땅한 방법이 없어 자괴감이 들고 한심스러워 사표를 냈다’며 교권이 땅에 떨어진 우리나라 교육풍토를 개탄했다.

평소 존경하는 모 대학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영악하고 타산적이며 기본예절도 없다’라며 실망과 걱정을 토로하였다.

실제로 우리주변을 보면 길거리에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식당에서, 공공장소에서 이웃을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마음가짐은 고사하고 기본적 에티켓(매너)조차 없는 청소년들이 너무나 눈에 자주 띈다.

노약자석에 태연히 앉아 아이패드를 두드리는 젊은이들을 보노라면 ‘예전엔 미안한 마음이 있어 조는 척하거나 머리라도 숙이고 있었는데’ 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더구나 청소년들의 활동무대인 인터넷이나 휴대폰세상은 어떤가. 온갖 욕설과 비어(卑語), 은어(隱語)가 난무하고 인터넷테러가 자행되기도 한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품을, 그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우리사회에 청소년 교육이 존재하고 있는지 심히 걱정스럽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이 이렇게 된 까닭은 무엇보다 가정과 학교가 교육적 기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며 예의를 지키고 이웃을 배려하는 인성교육은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경쟁위주의 기능교육과 입시위주의 주입식교육에 열중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유치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다.

대학교육도 지성과 학문의 도장이란 말은 이미 고전이 된지 오래고 마치 고시와 취업 준비학원처럼 되어버렸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착한 심성과 인간성을 회복하여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참교육을 받을 기회가 사실상 거의 없는 현실이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로버트 풀검의 얘기와 달리 우리 청소년들은 불행하게도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정말 알아야 할 것을 배울 기회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

교육기관이 그렇다면 정치, 사회, 언론 등을 통해서라도 청소년들이 배우고 본받을 기회가 있어야 되는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바로 엊그제만 해도 300여명의 초등학생 견학단 앞에서 국회는 욕설과 몸싸움을 보였다.

정략적 이익에만 급급한 채 스스로 법질서를 외면하는 정치인과 국회의원들, 편향적ㆍ반지성적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이해와 타협을 거부하는 일부 시민단체와 운동권 단체들, 떼를 쓰면 된다는 식의 불법시위대와 두드려 맞는 경찰 공권력, 선정성이 판을 치는 불건전한 TV드라마와 연예 프로그램들이 이 처럼 전통적 가치관과 사회기강이 무너지고 불법과 무례가 공공연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청소년들의 교육적 기능을 기대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다.

차라리 신문이나 TV등 매스컴을 안보고 안 듣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청소년 교육상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나 유럽, 또는 일본의 청소년들이 우리들 젊은이 보다 더 순수하고 예의가 바르다고들 한다.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듣던 우리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고 하신 도산 안창호선생의 말처럼,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미래가 달린 청소년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다음 몇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로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인성과 지성교육을 실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강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핵가족, 맞벌이 부부증가로 줄어든 부모ㆍ자녀 간 대화를 늘리고 학교에서도 홈룸(또는 채플)시간을 늘려 인격과 덕목을 가르쳐야 한다.

이기적, 편향적 가치관과 기능적 지식으로 무장하고 돈과 출세에 매진하는 젊은이보다는 다소 능력이 떨어져도 따듯한 마음과 합리적 지성으로 더불어 살 줄 아는 젊은이들을 등용하고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취업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로 학생인권조례나 학교체벌금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학교선생들이 열정과 자긍심을 갖고 교육에 전념하도록 교권을 확립하고 제도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미국에선 가장 존경받는 직업중 하나가 초ㆍ중학교 교사라는 말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셋째로 정치지도자, 사회지도층, 교육자, 시민단체들이 청소년들에게 본이 되는 언행을 실천하고, ‘동방예의지국에서 세계예의지국으로’ 나가는 교육운동을 촉구하고 나설 때다.

국제적 소양을 갖춘 인재양성이야말로 21세기 글로벌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교육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선진사회 만들기 길라잡이'선사연'의 홈페이지(www.sunsayeon.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