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잎에 눈 가리면 태산도 못봐
가랑잎에 눈 가리면 태산도 못봐
  • 신아일보
  • 승인 2007.09.1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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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형 열 사장

불교 태고종 혜초 스님은 어느 해 신년 법어에서 ‘가랑잎에 눈을 가리면 태산을 볼 수 없다 고 하는데 지금 사람들은 나 곧 아집(我執) 이라는 가랑잎에 눈이 가리어 국가와 사회 이웃이라는 태산을 보지 못한다’하고 ‘세상이 혼탁한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요즘 청와대 사람들을 보면 다시 한번 이일이 실감하게 한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과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 비서관의 비리의혹에 대해 보고를 받자마자 변씨를 잘랐다. 노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소식에 많은 국민이 대통령의 정식 사과 등 기대했을 것이다. 언론이 ‘변양균 신정아 연결고리’에 의혹을 제기 하자 그는 ‘깜도 안 되는 의혹’에 ‘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한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변 전 실장 문제는 할말 없게 됐다’며 ‘정 전 비서관이 주선한 자리에서 뇌물이 건너졌고 고위 공무원이 처벌을 받게 된 만큼 부적절한 행위’라고 말했다. 정권의 임기 말이면 흔히 레임덕이니 권력누수니 하며 대통령의 권력 약화를 거론한다.
그러나 최근 몇 차례의 임기 말 상황을 돌아다보면 그에 못 잖게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가 측근들에 의한 권력 형 비리의 빈발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임기 말 권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권력형비리가 기승을 부린 다는 것이 역설 적인 것 같지만 달리 생각하면 권력의 속성과 잘 맞은 것으로 느끼기도 한다. 대통령의 강력한 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던 측근들의 권력이 임기 말에 접어들어 대통령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통제를 벗어나 오 남용되는 경우가 더 잦아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임기 말 권력형비리에 대해서 는 도덕적인 비난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연일 진화하는 ‘신정아 쓰나미’가 몰려 닥쳤다. 이제 외신들까지 관심을 보이는 국제 이슈가 됐다. 불과 얼마 전 까지 만 해도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떠받들다가 한순간 돌팔매질하기에 바쁘다. 한마디로 집단 히스테리다. 예일대 박사출신의 젊은 여성 큐레이터와 ‘수준 높은’대화를 나눴노라며 떠벌렸던 인사들은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부인 하기에 정신이 없다. 시샘과 부러움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신 씨를 바라봤던 또한 부류의 인간들은 신 씨의 출세가도가 필연이 아니라 허위학력에 저급 사기극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학위위조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이같이 단정했는지도 모른다.
비로소 사회정의가 바로 섰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아직도 큐레이터로서의 능력과 열정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남들이 10시간 일하는 동안 20시간 이상 일했다’는 신씨의 항변을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의 만남 등 수많은 우연을 필연으로 엮어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을 것으로 상상된다. 그래서 마침내 ‘먹물’들의 속물근성을 사로잡는데 성공했을 것이다.
게다가 성 로비에 비해서는 너무나 하찮은 윤리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예견 능력이 형편없이 미술관에서 만났던 큐레이터가 정권을 흔드는 태풍의 눈이 되리라고는 미처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신씨와 변양균 전 실장의 e메일 로맨스는 화제를 독점 할 흥행요소를 확실하게 갖추고 있다. 정말 ‘깜이 되는’ 논픽션이다.
도덕적 우월 의식에 빠져있는 청와대에도 치명상을 입혔다. 여직원들이 야한 소설 ‘강한 남자’를 연재하는 신문을 절독할 만큼 윤리적 집단 결백증이 있는 듯하던 청와대에서 장관급 정책실장은 ‘18세 인증’이 필요한 내용의 e메일을 수백 통 주고받았다. 큐레이터는 정치적 문화적 권세를 사랑했다. 그는 ‘변씨 정도가 배후면 수없이 많다’는 말을 했다. 변씨 하나만으로도 비리백화점인데 수없이 많다니 청와대 외 정치권은 휩쓰는 쓰나미가 몰려올 모양이다.
청와대는 국정최고 사령탑이자 공직의 표상이다. 역대 정권이 청와대 안에 별도의 민정 또는 사정 조직을 두고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참모들의 비위를 감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표상이 더럽혀지면 공직 사회가 동료하고 사령탑이 흔들리면 국정이 표류할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도 민정수석 실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은 ‘국민에게 위임받는 권한인데 마치 프리랜서처럼 일했다’고 했다. 이번 변씨 사건에서 드러난 대통령과 참모들의 의식이 꼭 그렇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직후인 2003년 5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참여 정부의 1인자는 시스템’이라며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을 강조했다. 인사와 정책을 인간 관계가 아닌 시스템으로 시행해 원칙을 바로 세우고 비리와 부정의 개입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하지만 지금 온 나라를 뒤흔드는 이른바 ‘신정아 게이트’와 정 전 비서관 관련 의혹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대처를 보면 시스템이란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 그러자면 민정수석 실이 외부로 귀를 열러놓고 소문이든 정보든 들을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나는 절대 잘못이나 오류가 없다는 오만함이 절대부패를 낳는다는 것은 삼척 동자도 아는 역사적 교훈이다.
그런데도 가랑잎에 눈 가려 태산도 못 봐도 측근을 감싸고 언론만 탓 해왔으니 부패의 온상을 스스로 키워온 셈이다. 이제는 임기 말 정권이 도덕성을 유지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