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서 보다
꽃에서 보다
  • 김 병 섭
  • 승인 2012.06.1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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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꽃을 좋아하시는 모친 덕분에 겨우내 집안에 들여놓았던 수십 개의 화분들을 밖으로 내놓는 일은 따뜻한 봄날 휴일행사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꽃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화려한 얼굴로 다가온다.

황홀하다.

우리는 꽃의 아름다움을 보며 감탄하기도하고 행복해한다.

그러나 꽃의 아름다움과 그 향기는 오직 자신들의 종족보존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삭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모친께서 집안 마당에 각별히 신경을 쓰시는 꽃이 있다.

봄꽃과 초여름 꽃이 지면 피어나는 산수국인데 자잘한 꽃들이 모여 있는 큰 꽃이 매우 예쁘다.

그 커다란 꽃은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위해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있는 것일 뿐 열매를 맺지 못하는 헛꽃이라는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한, 꽃의 40%는 색맹인 곤충들을 위해 꿀샘을 자외선으로 표시를 해준다고 하니 얼마나 열심히 종족보존을 위해 진화해 왔는가에 감탄을 자아낸다.

그런 면에서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꽃은 아니지만 헬리코니아와 벌새는 마치 열쇠와 자물쇠처럼 발전하였다.

오직 벌새 에게만 꿀을 허락하고 벌새는 헬리코니아에게 맞추어 주둥이를 길게 변형 시켜 꽃의 요구에 부응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깽깽이 풀이란 놈이다.

씨에 개미들이 좋아하는 젤리상태의 지방덩어리인 엘라이오솜을 붙여 유혹 한다.

개미들은 먹이를 얻기 위해 씨를 끌고 간다.

그래서 개미의 동선을 따라 번식 하고 마치 우리가 한쪽 다리를 들고 깽깽이를 뛰는 듯한 번식모습에 깽깽이풀이라고 한다.

식물이 곤충을 부리다니 멋지다.

가을이 되면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은행나무가 있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암수. 안타깝지만 벌도 나비도 오지 않는다.

그저 바람에 사랑의 꽃가루를 실려 보낸다.

거기에서 맺는 것은 열매가 아니다 종족 보존을 위한 씨다.

그래서 은행을 채취 하려면 역겨운 겉껍질의 냄새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잠깐 동안 모친의 아기자기한 마당의 꽃밭 속에서 종족을 보존 하려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있는 것들이 보인다.

그런데 식물이 어떻게 그런 냄새를 풍기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줄 알았을까 신기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론 우성의 종족을 보전 하려는 각자의 몸부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동물도 수컷들의 목숨을 건 싸움이 있고 우리 인간들도 거기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다.

자식들을 우성 인자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기나긴 시간을 두고 환경과 여건에 순응해 진화해온 식물들에 비해 더 지독한 냄새가 나는 건 아닐까? 느긋하게 한 템포씩 천천히 가는 것을 어떨까. 그러면 급하고 무리하게 진행되는 부작용을 줄이지 않을까싶다.

겉으로 보이는 월등한 후손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진정한 우성인자를 육성하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미래일 것이다.

모친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들린다.

모종삽을 들고 다가가는데 손에 들고 계시는 꽃모종이 눈을 찡긋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