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그림 전문, 조선중기의 선비화가 김식
소 그림 전문, 조선중기의 선비화가 김식
  • 이 택 용
  • 승인 2012.05.0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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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인화가 양송당(養松堂) 김시와 손자 퇴촌(退村) 김식(金埴)은 회화사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두 분으로 연안김씨(延安金氏)이다.

8세 휘(諱) 김해를 파조로 내자시윤공파(內資寺尹公派)라 칭한 김식은 조부는 김시, 아버지는 김봉선(金奉先)이고 1579년(선조 12년)에 태어났다.

그는 산수도를 잘 그렸으나, 특히 그를 유명하게 해준 것은 독특한 소 그림이다.

조선 중기의 가장 유명한 소 그림 전문화가였기 때문에 웬만한 소 그림은 모두 그의 작품으로 불리어왔다.

그의 소 그림들은 할아버지 김시의 절파화풍(浙派畵風)과 영모화풍(翎毛畵風)을 토대로 간일한 산수를 배경으로 묘사되는 것이 상례인데, 음영(陰影)으로 표현된 소의 퉁퉁한 몸이나 엑스자형(X字形)의 주둥이, 달무리진듯 선량한 눈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화롭고 따뜻한 그림의 분위기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소 그림들은 전형적인 한국적 특색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소 그림들과는 현저하게 다른 특색들을 지니고 있다.

당대 문재(文才)로 신진 중에서 발군의 측면이 있었고 문명(文名)을 크게 떨친 만랑(漫浪) 황호선생이 기록한 제김식화후란 화평이 있으며 대표작으로 ‘고목우도’(枯木牛圖)와 ‘영모도’(翎毛圖) 등이 있다.

조선 중기의 회화사는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 병자호란(丙子胡亂) 등의 지극히 파괴적인 대란이 속발하고 당쟁이 계속된 불안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회화는 더욱 건전하게 발전하여 한국적 화풍을 뚜렷하게 형성하였다.

이 시대 회화에서 몇 가지의 중요한 사실들을 간추리면 첫째, 안견파(安堅派) 화풍을 비롯한 조선 초기의 화풍들이 한편으로 계속되었고 둘째, 조선 초기에 강희안(姜希顔) 등에 의해 수용되기 시작한 절파계(浙派系) 화풍이 크게 유행하였으며 셋째, 조선 초기의 이암(李巖)에 이어 김식(金埴), 조속(趙涑)등에 의해 영모화(翎毛畵)나 화조화(花鳥畵)부문에 애틋한 서정적 세계의 한국화가 발전하게 되었고, 묵죽(墨竹)·묵매(墨梅)·묵포도(墨葡萄) 등에도 이정(李霆), 어몽룡(魚夢龍), 황집중(黃執中), 허목(許穆)등의 훌륭한 화가들이 배출되었다.

이밖에 중국으로부터 남종문인화가 전래되었고, 소극적으로 나마 수용되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의 화풍들 중에서도 특히 안견파 화풍은 조선 중기에도 지속 되었으며, 이정근(李正根), 이흥효(李興孝), 이징(李澄)등의 작품들에 안견파 화풍의 영향이 특히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절파화풍은 15세기 중엽부터 강희안 등의 진취적인 화가들에 의해 수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중기에 이르러서는 김시(金?), 이경윤(李慶胤)등의 선비화가들에 의해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되었고, 후에는 김명국(金命國)같은 뛰어난 화원들이 이를 바탕으로 강한 필치의 화풍을 이루어냈다.

그러면서도 조선 중기의 화가들은 절파화풍과 함께 안견파의 그림도 그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영모화나 화조화의 부분에서는 천진스런 동물의 모습을 그린 이암(李巖)에 이어 산수를 배경으로 음영(陰影)을 구사하여 독특한 경지의 우도(牛圖)를 그린 김식(金埴), 수묵사의(水墨寫意)의 화조화에서 일가를 이룬 조속(趙涑)과 조지운(趙之耘) 부자 등이 한국회화의 색다른 경지를 이룩하였다.

이러하듯 문인화가 김식(金埴)은 경상도 김천도찰방이란 벼슬을 마치고, 이중환(李重煥) 선생이 택리지(擇里志)에 기록한 ‘조선인재 반재영남, 영남인재 반재선산’이란 인재의 고장인 선산(善山)에 우거하여 조선 중기의 회화사에 큰 획을 그은 선비화가로 선산의 자랑이다.

그의 후손들은 선산에 적은 숫자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