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민주혁명 정신 되새기며
4.19민주혁명 정신 되새기며
  • 박 재 권
  • 승인 2012.04.1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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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봄비가 지나간 4월의 19대 국회의원 선거일, 발밑에 무수히 떨어져 뒹굴고 있는 꽃잎을 보니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자기 한몸을 기꺼이 내던졌던 4.19희생자분들이 생각나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T.S.엘리엇은 ‘황무지’라는 그의 장편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는 시구로 4월을 정의했다.

잠든 산하를 푸르게 움돋게 하는 4월을 두고 잔인한 달이라 표현한 것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성장과 성숙 뒤에는 언제나 그만큼의 희생이 있어서일 것이다.

4.19민주혁명은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이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간 장기 집권했었다.

한편, 1960년 제4대 정 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된 3.15선거에서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그러자 같은 날 마산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4월 11일 1차 마산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참혹한 시체로 발견됨으로써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제 2차 시위가 다시 일어났다.

그러자 4월 18일 고려대학교의 4천여 학생이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시위대의 일부가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피를 흘리며 크게 부상당했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다음날인 4월 19일 총 궐기했다.

부산에서는 신정융 열사와 같은 학생들과 부산시민들이 함께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혁명적 투쟁을 벌였고 당시의 정권은 시민들을 총칼을 앞세운 무력으로 탄압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그 이후 독재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시내 각 대학 교수단 300여명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시민들과 시위에 동참하였고 드디어 4월 26일,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시위군중은 무력에도 굽히지 않고 더욱 완강하게 투쟁하여 결국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4월의 비는 겨울동안 잠자고 있던 생명력을 새롭게 일깨우는 비이다.

비록 미완의 혁명이라는 평가가 공존하기는 하지만 4.19민주혁명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바로 서고 국민이 주인된 국가로서 올바른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외압이나 간섭없이 나의 소중한 한표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4.19의 정신을 되살려 참다운 민주주의를 가꿔 나가는 것이야말로 오늘의 민주주의를 있게 한 수많은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다시 한 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