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 보는 6.25전쟁 57주년
되돌아 보는 6.25전쟁 57주년
  • 신아일보
  • 승인 2007.06.30 14: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숨져간
젊은 영령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개봉) 영화가 6.25전쟁 57주년의 의미와 참상을 일깨운다.
6.25전쟁이 일어 난지 57돌을 맞았다.
민족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1950년 6월25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남북한에 극심한 증오와 적대감을 남겼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3년 간 계속되던 총성과 포화는 멈췄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민족의 갈등과 대립을 갈수록 심화시키기만 했다.
정전 협정은 말 그대로 전쟁은 정지시키기 위한 협정이지 전쟁을 정지시키기 위한 정치적 협정이 아니다. 따라서 정전협정에는 정전협정이 맺어진 후 3개월 이내에 전쟁을 완전히 끝내기 위한 ‘한 급 높은 정치회담’을 개최하도록 규정한 조항이 있다. 그러나 정치회담은 3개월을 넘겨 1954년 5월에 가서야 제네바에서 열렸고 유엔군 관련국들과 중국 북한이 서로 간의 입장차이만 확인 한 채 결렬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정권 협정의 내용 중 전쟁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들을 무용지물이 되었다.
정전 협정의 13조에는 남과 북의 주요항구에 중립국 감시소조를 설치하여 외부로부터 들러오는 무기를 통제하도록 규정하였지만 1956년 남과 북은 중립국 감시반원들을 내 쫓았다.
유엔군 사령관은 감시소조의 활동과 13조의 내용이 무효임을 선언했다. 이후 남한에는 핵 탄투를 적재할 수 있는 미사일이 배치되었고 남과 북은 무력증강을 위한 무한 경쟁에 돌입하였다. 한반도는 어제라도 전쟁이 다시 시작 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그간 남과 북은 공동으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이루어 냈으며 6.15공동 선언이후 남북 간의 긴장관계가 완화되었다.
그러나 긴장 완화되는 과정에서도 2002년 서해 교전이 일어나 이 땅의 소중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사태가 발생했고 급기야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다.
1950년대부터 정전이라는 용어 대신 휴전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휴전의 원래 뜻과는 달리 전쟁을 다시 쉬고 있다는 점은 언제라도 다시 시작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6.25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남한에서는 6.25사변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요즘은 ‘한국전쟁’이라는 말을 쓴다. 중국에서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르는데 미국에서 맞서 조선을 도운 정쟁이라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한국전쟁(Korean War)’으로 통하지만 미국정부의 공식 용어는 ‘한국분쟁(Korean Conflict)’이다. 우리는 아직도 매년 6.25일을 그 의미조차 모호한 6.25사변 일로 정해놓고 있다. 6.25는 국민 사이에서도 ‘잊혀진 전쟁’이 된지 오래다. 초등학생 3명중1명은 ‘조선시대에 일어난 전쟁’으로 알고 있으며 5명중 1명은 ‘일본과 우리나라가 싸운 전쟁’으로 혼동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다. ‘6.25는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고 우기는 어른들이 적지 않은 판에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러나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숨져간 젊은 영령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땅의 젊은이들뿐 아니라 저 멀리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캐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터키 태국 그리스 네덜란드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필리핀 벨기에 룩셈부르크에서 날아와 젊음은 꽃처럼 불살은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의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
부산의 참전 16개국 전사자 및 실종자 4만 895명의 이름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국제연합)기념 묘지’에 세워진 이 추모 비에 우리는 ‘님들의 이름은 사랑으로 새깁니다’라고 써 있다. 여기에 분명히 짚고 갈 대목은 지금도 냉전을 넘어 정전협정이 체결 된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 등 군사분계선을 두고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났으며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정착이 남 북한간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를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데도 한국 정부는 한반도의 안보문제에서 항상 뒷전에 있어야만 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무엇이 달라 졌는가. 평화가 공고히 되고 통일이 앞당겨 졌는가. 북의 선군 정치 로켓개발 핵실험 그리고 최근 평양에서 열린 6 15선언 7주년 기념행사의 파행적 진행. 그것은 선언이라는 종이 한 장으로 평화가 정착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평화는 선언이나 협정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전쟁 억지력을 튼튼히 확보해야 하며 한미 군사동맹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나마 6자 회담이라는 기회를 통해서 한국정부가 스스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이제 이 땅의 후손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그들에게 전쟁의 위험을 고스란히 넘겨줄 것인지 안이면 이제 전쟁을 끝내야 만 한다. 이것만이 우리의 갈 길이 평화와 통일임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지켜야 하고 잘라진 허리는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