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건 다주고 북한 쳐다만본 ‘미국’
줄건 다주고 북한 쳐다만본 ‘미국’
  • 신아일보
  • 승인 2007.04.20 1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은 15일 고(故) 김일성 주석의 95회 생일인태양절을 맞아 기념식과 공연을 개최했고 14일부터는 연례 행사인 ‘아리랑’ 공연을 비롯해 ‘김일성화(花)축전’, ‘4월의 봄 친선 예술축전’ 등 평양은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기다리는 2.13합의의 핵 시설폐쇄(shut down)조치이행 소식은 없다. 북한은 6자 회담 2.13베이징 합의에 따라 14일까지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핵 사찰을 받고 영변 원자로도 폐쇄하기로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을 비판하거나 압박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동결해제선언에 대해 북이 취한 조치라고는 ‘해제가 현실로 증명되면 행동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 대변인의 전부다.
북한이 과연 2.13합의를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북한의 요구 조건이었던 방코델타 아시아(BDA)에 대한 동결 조치를 풀었는데도 여기에 예치된 2500만 달러를 찾아가지 않고 있다.
도대체 속내를 알기 어려운 집단이다. 일각에선 BDA에 분산 예치된 북한의 50여개 계좌 가운데 몇몇의 소유주가 이미 세상을 떠나 돈을 찾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베트남, 몽골 등 BDA동결조치 이후 잇따라 막힌 제3국의 자금유통 경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파악하느라 시간을 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BDA동결 조치가 해제된 마당에 2.13합의 이행을 지연시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국제적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고 본다.
2.13합의는 북한의 핵실험과 유엔 제재라는 격랑을 헤치며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이 외교적 역량을 쏟아 부은 끝에서 만들어낸 결실이다.
본질에서 벗어난 BDA문제로 2.13합의의 근간을 흔든다면 북한 자체에도 결코 유리할 것이 없다. 당장 중유 5만t과 쌀 등 한국의 초기자원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 더러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더더욱 요원한 과제가 될 뿐이다.
정부가 이번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경제협력추진위(경추위)의 주요 의제도 대북 쌀 지원 문제이다. 북한이 2.13합의이행 시한을 넘기고 있지만 그 때문에 당장 대화를 중단시킬 이유는 없다.
북한과 긴밀하게 유지하면서 막바지까지 설득한다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우리 정부는 장관급 회담을 통해 북한에 40만t 규모의 쌀을 지원하는 안건을 경추위에서 논의한다는 언질을 줬다.
2.13합의가 실천된다는 기대하에 남북간에 이뤄진 묵계였다고 생각한다. 핵실험까지 한 북측이 2.13합의를 완전히 무시한다면 쌀 지원의 명분은 사라지고 만다. 대북 식량 및 비료지원은 인도적 측면에서 조건에 구애 받지 말고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북핵이 악화될 때 대규모 예산이 요구되는 지원을 남측 여론이 용인할 리 없다. 대북 지원 문제에 유연하게 돌고 있던 한나라당도 ‘쌀 비료지원에 신중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북한이 특히 경계할 대목은 미국내 보수 강경 세력이 다시 힘을 얻는 상황이다. 벌써 그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동아태 선임 보좌관은 ‘북한을 길들이려던 미국이 북에 길들여졌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북한에 대한 근본적 불신감을 드러내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다. 북한이 가시적 조치를 통해 의구심을 털어내는 일이 시급하다. 당장 영변 핵시설 폐쇄작업에 착수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수용해야 한다.
BDA 자금회수에 어려움이 있다면 6자회담 참가국들의 양해를 구할 필요도 있다. 그렇게만 한다면 남측은 부담 없이 쌀 지원 일정에 합의할 수 있다.
송민순 외교부장관과 라이스 미 국무부장관은 전화통화를 갖고 ‘며칠동안 상황을 지켜보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경추위 기간내에 뭔가 행동을 보여줘야 파국을 막을 수 있음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통일부는 ‘북한의 진의를 파악한 뒤 쌀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런데도 북한은 2.13합의 이행보다 5년·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를 맞은 김일성 우상숭배가 더 중요하고 급한 듯하다.
더구나 북한은 올해 행사를 ‘승리자의 축전’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핵 개발로 이뤄낸 승리의 축제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나 미국은 북의 ‘선의’만 기대하고 있고 중국까지 ‘좀 기다려 보자’고 한다. 국제적인 약속보다 김일성 우상숭배와 김정일 세습정권의 보위를 더 우선시 하는 북한을 다시 한번 불신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위원장 등 지도부가 강행한 선군정치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국면을 반전시키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것을 강조하며 ‘2.13합의’ 등 비핵화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자신감마저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수령님의 탄생 95돌은 당당한 강국의 지위에 오른 선군조선의 위력을 만방에 과시하고 태양민족의 존엄·기상을 힘있게 떨치는 일대 정치적 사변’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와 미국 등은 북한 체제의 본질을 똑바로 알고 대응해야 한다. 쌀이든, 비료든 줄건 다 주고 보자는 식으로는 언제까지 끌려 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