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태아 성별, 이제는 언제든지 알 수 있다
[기고] 태아 성별, 이제는 언제든지 알 수 있다
  • 신아일보
  • 승인 2024.03.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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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법승 정한벼리 변호사

"아빠를 닮았네요", "분홍색 옷이 잘 어울리겠네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태아 성별을 알 수 있는 임신 12주가 되면 임산부는 의료인에게 위와 같은 간접적이고 비유적인 의료인의 말을 통해 태아 성별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이는 의료인이 임신 32주 전 임산부나 타인에게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경우 의료인을 형사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 제20조 제2항 즉 '태아 성별 고지 금지 조항'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헌법재판소가 태아 성별 고지 금지 조항을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 이제는 임신 32주 전에도 임신 주수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태아 성별을 알 수 있게 됐다.

태아 성별 고지 금지 조항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남아선호사상 팽배했을 당시 태아가 여아인 경우 임신을 중단하는 문제적인 행태를 막고 태아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입법됐다.

그러나 남아선호사상으로 성비 불균형이 심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특정 성별을 일방적으로 선호하는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가 사라졌고 이에 따라 출산 순위별 출생 성비도 모두 자연성비 정상범위 내에 도달했다.

즉 자녀 성별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이 거의 사라져 이제 더 이상 태아 성별과 낙태 사이에 유의미한 관련성이 없어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국민 의식 변화에 따라 '임신 32주 이전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태아 생명에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태아 생명을 박탈하는 낙태 행위 전 단계로 취급해 이를 제한하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라고 판단하며 태아 성별 고지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현실에서는 의료인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 성별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지만 10년간 태아 성별 고지 금지 조항 위반에 따른 수사와 기소가 이뤄진 적이 없고 이는 곧 태아 성별 고지 금지 규정이 행위 규제 규범으로써의 기능을 잃고 사문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시대가 변화했다고 하더라도 태아 성별을 알게 된 부모가 성별을 이유로 태아를 낙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기에 이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태아 생명을 박탈하는 행위는 성별 고지로 인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 행위 그 자체로 인한 것이므로 태아 생명 보호를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할 단계는 성별 고지 단계가 아니라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 단계라고 명시했다.

요컨대 태아 성별 고지 금지 조항은 태아 생명 보호를 위한 적절한 수단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필자 역시 이제는 쇠퇴한 남아선호사상을 근거로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하고 나아가 이를 위반한 의료인에게 형사처벌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태아 성별 금지 조항은 필요 이상의 지나친 국가 개입이라고 생각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임산부와 그 가족들에게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는 더 이상 태아에게 위해가 된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낙태와의 개연성을 찾기 어려운 태아 성별 고지 금지 조항을 유지하기보다는 풍요롭고 행복한 가족생활을 위해 자녀를 임신한 부모의 태아 성별 정보 접근권과 행복추구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법률은 사회 변화에 발맞춰 함께 변화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은 우리나라 시대상의 변화를 반영한 유의미한 결정이라 할 것이다.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