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낵 총리는 지난 7일 주례 총리 질의응답 과정에서 제1야당인 영국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당수가 편협한 여성관(기사화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을 드러낸 것과 관련해 “키어머 당수는 ‘여성을 정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having difficulty in defining a woman)”고 조롱한 것이다.
문제는 수낵 총리가 농담했을 당시 의회 방청석엔 트렌스젠더 여성인 브리아나 제이(Brianna Ghey)의 엄마 에스더(Esther Ghey)가 있었단 사실이다. 스타머 당수는 수낵 총리를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Shame)”라고 맞받아쳤다.
‘커밍아웃’(동성애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행동) 후 우울증을 겪던 제이는 지난해 2월 친구로 지내던 두 명의 학생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에스더는 당시 수낵 총리, 스타머 당수 등 지도자들을 만나 학교 내 우울증을 가진 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당부하고자 의회를 방문했다.
다행히 이후 에스더는 수낵 총리과 스타머 당수이 설전이 있은 후 방청석에 도착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수낵 총리가 “내 농담과 해당 사건을 엮지 마라”며 부적절한 농담에 대해 정식 사과를 지금까지도 거부해 정쟁이 멈출 줄 모르자 시민들은 정치권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자존심이 세다고 유명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발언이나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하는 순간 대중들은 이를 환영한다. 분명 사과를 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고 대중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단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미덕이 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도 언젠가부터 사과에 인색해진 모습이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더 나은 정치로 보답하겠단 선언이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물론 정치인 입장에선 쉽게 사과했다간 대중에게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일지도 모른단 우려가 커서 사과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가 선진 정치가 되기 위해선 사과에 인색해선 안 된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경쟁자에 의해 자신의 과오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분명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의 과오가 밝혀져 억울한 측면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정치도 사람이 하는지라 앞으로 다가올 유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상대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저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인이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의 의미를 담아 새로운 정치를 보여준다면 현명한 유권자는 넓은 아량으로 품어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사과한다고 해서 함부로 그를 무시하지 않은 선진 사회에 이미 진입했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