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비자 중심’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기자수첩] ‘소비자 중심’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 문룡식 기자
  • 승인 2024.01.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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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카드가 최근 ‘신한 더모아 카드’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 카드는 역대급 혜자 상품(혜택이 높은 카드)로 입소문을 탔으나, 과도한 혜택 퍼주기 설계 탓에 회사에 손실을 안기는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더모아 카드 주요 혜택은 5000원 이상 결제하면 1000원 단위 미만 금액을 모두 포인트로 적립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더모아 카드로 5500원을 결제했다면, 1000원 단위 미만인 500원을 카드 포인트로 되돌려 받는 방식이다.

작위적이긴 하지만 5999원어치를 구매한다면 한 번 결제로 최대 999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상품 혜택의 관건은 포인트 적립에 월 적립 한도와 횟수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동일 가맹점에서 포인트 적립이 1일 1회만 가능하다는 최소한의 제한만 있을 뿐, 이를 피해 영리하게 카드 결제를 한다면 한 달 만에 많은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

설계 실수로 인한 부담은 회사에 손실로 돌아갔다. 신한카드는 더모아 카드로 인해 지금까지 1000억원 규모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카드 가입자 다수가 뭉쳐 조직적인 악용을 통해 포인트를 과도하게 수급한 사례도 일부 적발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일부 약사들과 가족, 지인 890명이 서로 각자의 매장에서 결제하는 방식으로 대규모 부정결제를 일으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A약국 주인이 B약국에서, B약국 주인이 A약국에서 매일 5999원씩 결제하는 방식으로 포인트를 부정수급했다.

이런 방식으로 약사 1명이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포인트를 적립한 경우도 여러 건 있었다.

이에 신한카드는 부정 이용자들의 카드를 정지하고, 분할결제 제한 등 혜택과 조건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약관 개정을 추진하는 중이다. 손실이 더 커지는 것을 막고, 부정을 통한 혜택 수급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물론 일반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을 소수 악성 이용자가 독차지하는 건 막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일부 악용 사례를 들면서 회사 상품 설계 실수를 덮고 대다수 소비자 혜택을 축소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설사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 혜택 축소가 불가피하다 해도, 근본적으로 회사 책임이 큰 만큼 소비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먼저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소비자가 금융사에서 내건 상품과 혜택을 신뢰할지 의문이다.

문동권 신한카드 사장은 올 상반기 경영 방향으로 ‘트리플 원’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최우선 가치를 소비자 중심에 두고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1류 기업을 향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최우선 가치를 소비자 중심에 둔다는 게 어떤 뜻인지를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신아일보] 문룡식 기자

moo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