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박수칠 때 떠나는 최정우
[기자수첩] 박수칠 때 떠나는 최정우
  • 장민제 기자
  • 승인 2024.01.1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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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철강업계에서 들려온 이슈 중 하나는 3연임이 무산된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이다. 포스코홀딩스 회장추천위원회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지원서를 제출한 내부후보에 대한 1차 심사를 통해 ‘평판조회대상자’로 8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눈길을 끈 건 짧은 한 문장이다. 회추위는 “참고로 앞으로 심사할 내부후보 대상자 리스트에 최정우 현 회장은 없다”고 단언해 업계 이목을 끌었다. 정권의 퇴진압박에도 물러나지 않던 최 회장이 그동안 이뤘던 ‘탈 철강’과 ‘주가부양’ 등 경영성과를 앞세워 3연임에 도전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최 회장은 지난해 12월 자사주 3억원어치를 추가 매입하며 책임경영 의지도 내비쳤다.

최 회장의 연임포기 관련해 구체적인 정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애초부터 차기회장 지원서를 내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지원을 했지만 심사과정에서 탈락된 건지 불확실하다. 분명한 건 포스코 회장 잔혹사를 끝내고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이다.

포스코 역대 회장들은 창업자인 고 박태준 전 회장을 시작으로 정권 교체 때마다 예외 없이 사퇴했다. 박태준 회장은 196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포항제철을 출범시켰고 약 24년간 한국 제철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1992년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 후보와 정치적 갈등으로 회장직을 내려놨다. 이어 박태준 회장의 측근인 황경로 회장과 정명식 회장이 포스코를 이끌다 YS정권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4대 회장은 첫 외부 인사인 재무부 장관 출신 김만제 회장이다. 그는 1994년 3월 선임됐고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사임했다. 이후 유상부 5대 회장(1998~2003년), 이구택 6대 회장(2003~2009년), 정준양 7대 회장(2009~2014년), 권오준 8대 회장(2014~2018년) 등도 연임엔 성공했지만 정권교체 후 드리워진 사정당국 칼날을 이겨내지 못하고 물러났다.

반면 최 회장은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까지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무리하면 처음으로 ‘연임’을 완주한 회장이 된다. 그는 2018년 7월 포스코그룹 회장에 오른 뒤 2021년 3월 한차례 연임했다. 정권의 압박이 더욱 거세지기 전에 박수칠 때 떠나는 셈이다.

다만 고작 ‘2연임 완주’를 칭찬하는 현실은 서글프다. 경영능력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정권 압박에 물러나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포스코 민영화 후 20여년간 경제·사회는 급격히 변화됐지만 정치는 그대로인 듯하다. 재계서열 5위인 포스코그룹의 회장직이 더 이상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겨져선 안 된다.

jangsta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