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둘은 하나이고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자수첩] 둘은 하나이고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 윤경진 기자
  • 승인 2024.01.03 0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명확한 장애 원인도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정부는 외부 해킹 공격으로 인한 장애는 아닌 것으로 결론 내렸다.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네트워크 장비 라우터 포트에 대한 추가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개별적인 부품 장애를 찾는 것까지 행정력을 투입하는 데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전산망 장애로 '디지털 정부'라는 자부심은 금이 갔다. 전국 주민등록 등·초본, 인감증명 등 민원서류 발급 등이 마비되면서 전 국민이 불편을 겪었다. 장애 복구 시간이 늦춰지면서 불편은 더욱 커졌다. 현재까지 장애 원인에 대한 시원한 답변도 들을 수 없으니 전산망 장애가 복귀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실정이다.

데이터업계 전문가는 '이중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장애 규모가 커졌다고 진단했다. 이중화 시스템은 운영 중인 서비스 안정성을 위해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이중으로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카카오는 서비스 장애 이후 자사의 데이터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투자해  이중화를 넘어 다중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산망 장애를 보면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미 해군 특수전 부대 네이비 실(Navy SEAL)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배운다는 '둘은 하나이고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개념이 생각난다. 극한의 상황을 경험하는 군인이다 보니 그만큼 대비책이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두 가지 대비책이 있다면 하나가 어긋나도 나머지로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뿐인 대비책이 무너지면 대비책은 없게 된다.

미군은 지구상에서 글로벌화가 가장 잘된 조직으로 꼽힌다. 이들은 전 세계 파병하고 원하는 지역은 빠른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고 전 세계에 있는 미군들과 유기적으로 정보를 공유해 글로벌 기업을 꿈꾸는 기업들이 미군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이 강조하는 개념이 철저한 대비책 마련이다.

전산망 장애가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네이비 실의 개념을 곱씹어 보고 다양한 대비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전산망 장애를 계기로 기술력 높은 대기업이 참여해 직접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는 해결책이 나왔다. 현행 소프트웨어 진흥법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은 국가기관이 발주하는 소프트웨어 사업에 참여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IT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전산망을 관리해도 실질적인 일은 하청업체에서 주로 이뤄질 것"이라며 "업무를 보는 인력은 크게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이보다는 전산망을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정부 소속 전문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해법이다. 디지털 곳간 열쇠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you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