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선거제 개편,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데스크칼럼] 선거제 개편,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 주진 정치사회부장
  • 승인 2023.12.0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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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이 불과 4개월여밖에 남지 않았지만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선거제 개편과 선거구 획정 논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원내 거대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정치권은 모두 선거제 개편에 따른 이해득실 계산에만 골몰하고 있다. 

당장 오는 12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는데, 정치신인들은 정작 자신들의 선거구도 모른 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어야 하는 처지다. 이러다간 여야가 차일피일 논의를 미루다 선거일이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꼼수로 선거법을 급조하는 무책임한 행태가 반복될 수 있다.

21대 총선 직전인 2019년 12월 여야는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을 위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거대 양당은 꼼수 위성정당을 창당해 비례대표 의석까지 독식하면서 양당 구조를 고착화했다.

그동안 위성정당을 허용한 준연동형 비례제 폐해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거대 양당 내부에서는 당리당략에 따라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 더 나아가 병립형 회귀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봇물 터지듯 나오는 신당 논의도 위성정당 창당이 용이한 현행 선거법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 의석을 배분하는 ‘병립형’ 회귀를 선호하고 있다. 원내 다수당인 민주당은 지난 대선 때 비례 의석을 지역구 당선자 수와 연관 지어 나누는 ‘연동형’을 약속했지만, 내부에선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난상토론을 벌이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재명 대표), ‘약속을 파기할 경우 정치적 책임이 있다면 져야 할 것’(홍익표 원내대표)이라는 당 지도부의 발언은 이미 병립형 비례제 회귀를 시사한 것으로 읽혀졌다. 실제 내년 총선에서 비례 의석을 많이 얻기 위해서는 병립형이 유리하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허용하는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하거나 병립형 비례제로의 회귀를 선택할 경우 정치개혁 의지를 스스로 저버리고 정당 신뢰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는 이 대표의 리더십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이 대표는 지난 9월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국회로 넘어오자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뒤집고 부결을 호소해 빈축을 샀다. 당내에서도 ‘눈앞의 이익을 위해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나’, ‘고작 비례 몇 석을 더 얻자고 소탐대실’ 등 비판이 쏟아졌다.

여야는 당리당략 유불리를 따지기 전에 선거제 개편이 왜 필요한지 그 취지부터 다시 짚어야 한다.

기득권 양당의 구도를 깨고 표심이 의석수에 그대로 반영되는 비례성 강화, 제3세력 원내진출로 다양성 증대, 지역주의 해소 등을 위한 선거제 개편은 정치개혁의 첫걸음이다. 

지난 21대 총선 때 거대 양당의 국회 의석점유율은 위성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을 합하면 94.3%였다. 그에 비해 위성정당을 포함한 양당의 정당 득표율은 79.4%에 그쳤다. 하지만 정의당과 같은 소수정당은 10% 득표를 하고도 의석은 2%에 불과했다. 

정당 득표율과 실제 의석수 괴리를 좁히려면, 지역구 의원 대비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 비례성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거나 지역구 의석을 줄이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존 제도보다 선거의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제도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려면 위성정당을 금지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지난 총선 열린민주당처럼 ‘위장된 위성정당’이 될 가능성이 큰 ‘비례정당’, 곧 지역에는 후보를 내지 못하면서 비례만을 노리는 ‘비례대표용 정당’을 금지하도록 입법화해야 한다. 간단하다. 거대 양당이 모두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위성정당 방지법’을 통과시키면 된다.

헌정사상 최초로 선거제 개편을 위한 국민 공론조사도 실시하고, 20년 만에 국회 전원위원회를 개최해 의원 개개인의 의견을 듣기도 했다. 이 모든 논의 과정이 허사가 되어선 안된다. 만약 거대 양당이 기득권을 강화하는 꼼수로 선거제 개편을 마무리한다면, 민주주의와 정치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선거는 권력을 쫓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대표해 일하는 ‘종’을 뽑는, 엄숙한 대의 민주주의 실현의 장임을 잊지 말자. 

jj72@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