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DSR 규제의 루프홀 줄이고 가계 부채 억제 속도내야
[기고] DSR 규제의 루프홀 줄이고 가계 부채 억제 속도내야
  • 신아일보
  • 승인 2023.10.2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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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고금리 기조 장기화에 따라 나날이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있는 가계 부채가 우리 경제 뇌관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가계 대출 현황’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현재 국내 가계 대출 차주 수는 모두 1,978만 명에 달하고, 이들의 전체 대출 잔액은 1,845조 7,000억 원에 달하며,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332만 원에 이른다. 전체 가계 대출자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2분기 말 39.9%로 추산됐다. 연 소득의 39.9%를 빚 갚는 데 쓰는 셈이다. 한국의 명목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분기에 101.7%로 스위스(126.1%), 호주(109.9%), 캐나다(103.1%) 뒤를 이은 세계 네 번째였다. 전 세계 명목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 평균은 61.9%다.

지난달 전(全) 금융권의 가계 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6개월 연속 증가한 가운데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끌어다 쓴 ‘다중채무자’가 전체 가계 대출자 1,978만 명의 22.6%인 448만 명에 달해 역대 최대치에 이른다. 문제는 최근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7%대에 육박하는데도 집값 상승 불안감에 잠시 주춤하던 가계 대출이 다시 급증하고 있다. 지난 1월 기준금리를 3.5%로 인상한 이후 6회 연속 동결했음에도 불구하고 5대 시중은행 대출금리는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지난 10월 23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연 4.56~7.145%로 상단은 9개월여 만에 7%를 다시 넘어섰고, 하단은 드물게 보이던 3% 금리가 자취를 감추고 4%대로 진입해 서민들의 고충은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10월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9일까지의 5대 시중은행의 지난 19일 기준 가계 대출 잔액은 685조 7,321억 원으로 지난달 같은 기간보다 3조 4,027억 원이나 늘었는데 2021년 10월 3조 4,380억 원 이후 2년 만에 최대 증가 폭이다. 

우리 경제의 최대 위험 요소로 꼽히는 가계 부채가 다시 늘고 있는 데는 금융 당국의 탓이 크다. 39조 원에 달하는 특례보금자리론을 풀어 고소득자, 고가주택 신규 매수자에게도 대출을 해줬다. 특례보금자리론에 대한 DSR 규제의 예외로 청년들의 경우 만 34세 이하, 신혼부부에 대해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성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소득자에도 역마진 공급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계 부채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 이뤄져야 하는데 특례보금자리론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로 변형돼 오면서 가계 부채 상승을 부채질한 것으로 지적한다. 금융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3,857억 원 규모의 ‘상생 금융’이란 이름으로 금융회사들의 대출금리를 내리게 했다. 집값을 떠받치려는 무리한 정책이었다는 평가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 대출이 4월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걱정을 키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금융 당국은 대출을 늘려 집값을 떠받쳐보려는 얕은 생각을 내려놓고, 이제라도 금융시스템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한국은행의 통화 긴축 정책에 구멍을 내는 일만은 삼가야 한다.

미국의 긴축 정책이 끝나지 않은 데다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물가에 대한 불확실성은 한층 커진 상태인 데다 수출이 12개월째 뒷걸음질 치고 소비도 위축되는 가운데 올해 우리나라 경제가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가계 대출을 줄이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기도 마땅찮은 상황이다. 가계 부채가 빠르게 늘고 원·달러 환율도 11개월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는 등 금리 인상 요인은 분명히 있지만, 최근 소비 부진과 중국 등 주요국의 성장 둔화로 뚜렷한 경기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부실화하면서 금융기관 건전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도 회복세가 미약한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지난 10월 23일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재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해당하는 차주의 비중이 작다.”라며 “DSR 규제의 루프홀(Loophole │ 빠져나갈 구멍)이 많지 않도록 해당 가구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해 보고 그다음 거시정책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먼저 규제 정책을 조이고 그래도 가계 부채 증가 속도가 안 잡히면 심각하게 금리 인상을 고려할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최근 가계 대출 급증에도 부동산 대출 규제에 소극적인 금융 당국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읽힌다. 현재 전세자금대출·보험약관대출·예적금담보대출·중도금대출·카드사 현금서비스 등 13개 유형의 대출이 DSR 규제 예외를 인정받으면서 풍선효과를 막기 역부족이라는 우려와 함께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결국 가계 대출 급증 문제는 통화 정책에서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미시 경제 정책으로 풀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도 가계 대출 급증의 원인으로 지목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요건을 강화하고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을 조기 종료해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대출 규제 완화 조치는 여럿 남아 있다. 당시로서는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이제는 내수 악화, 금융 불안 가능성 등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우리 경제는 고물가·저성장·환율 불안의 ‘트릴레마(Trilemma │ 삼중 딜레마)’에 빠져 꼼짝을 못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DSR 규제의 예외 조항을 면밀하고 촘촘히 재검토하여 DSR 규제의 루프홀(Loophole)을 줄이고 가계 부채 증가 속도를 억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국민과 경제 충격을 우려해서 급격한 대출 조이기가 어렵다면 최소한 규제 신호를 지속해 내보내면서 집값 상승 기대심리를 꺾어야 한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금리가 다시 1%대로 떨어져서 비용 부담이 적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경고를 드린다. 그렇게 금방 떨어질 것 같지 않다”라며 영끌·빚투족을 향해 다시 경고장을 날렸는데 가계는 이러한 경고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고금리로 대출은 받았는데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자칫 파산에 이를 수 있음도 유념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19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연 3.5%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지난 1월13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뒤 6차례 회의 연속 동결한 것이다.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 8월 한은이 내놓은 전망치를 웃돌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하면서도 한은은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 금리 인상이 경기에 미칠 악영향을 더 크게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처지에 놓인 한은이 가계부채 억제에 구실을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금융당국의 구실과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회의 뒤 기자간담회에서 “높아진 국제유가와 환율의 파급 영향,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으로 금년 및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 8월 전망치(3.5%, 2.4%)를 상회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자신을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가운데 5명이 “긴축 강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고, 그중 1명은 “가계부채가 악화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금통위원들은 기준금리 동결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0.25%포인트 올릴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건 늘 해오던 얘기다.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물가상승세가 다시 가팔라지고 있지만, 통화정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정부도 세수 펑크로 지출을 줄이고 있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민생의 어려움을 전혀 덜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 경제의 최대 위험요소로 꼽히는 가계부채마저 다시 늘고 있다. 금융당국 탓이 크다. 39조원에 이르는 특례보금자리론을 풀어 고소득자, 고가주택 신규 매수자에게도 대출을 해줬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도 선보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상생금융’이란 이름으로 금융회사들의 대출 금리를 내리게 했다. 집값을 떠받치려는 무리한 정책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4월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걱정을 키운다.

최근 금융당국이 뒤늦게 가계부채 관리에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8월에 6조1천억원 늘었던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이 9월에는 2조1천억원 증가에 그쳐, 증가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나 주택담보대출은 5조7천억원이나 늘었다. 아직 앞날을 낙관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대출을 늘려 집값을 떠받치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내려놓고, 이제라도 금융시스템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한은의 통화긴축 정책에 구멍을 내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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