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락가락 금융당국, 문제 생기면 '은행 탓'
[기자수첩] 오락가락 금융당국, 문제 생기면 '은행 탓'
  • 문룡식 기자
  • 승인 2023.08.3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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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진정세를 보였던 가계대출이 다시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말 은행권 가계대출은 1068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잔액은 820조7718억원으로 5개월 연속 증가했다.

금융당국은 상황이 악화하자 원인 찾기에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권에서 판매하는 ‘50년 만기 주담대’를 가계부채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시중은행이 7월부터 본격 판매를 개시한 50년 만기 주담대가 대출 수요를 자극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 수단으로 악용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실제 금융당국은 국내 17개 은행 은행장을 소집해 영업현장에서 DSR 등 현행 대출 규제가 적용됐는지 확인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또한, 금융감독원은 10월까지 가계대출을 취급한 은행을 대상으로 가계대출 취급실태 현장 종합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 은행권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금융당국 정책 기조에 맞춰 초장기 주담대를 통해 차주 빚 상환 부담 완화에 동참했는데, 되레 가계부채 증가의 주범으로 몰린 형국이다.

애초에 50년 만기 주담대는 정부와 금융당국에서 먼저 꺼내든 카드다. 주택금융공사는 지난해 8월 50년 만기 보금자리론을 처음으로 출시했고, 올해 1월 출범한 특례보금자리론도 50년 만기 선택지가 포함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DSR 규제 완화 대안으로 나온 방안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도입을 추진했던 상품이다. 은행 50년 만기 주담대와 다른 점은 가입연령 제한 차이다.

물론 50년 만기 주담대가 실제 가계대출 증가에 영향을 미치긴 했다.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은 8월 한 달 동안 2조원 이상 판매됐다.

그러나 7월 중순 출시돼 한 달 반 동안 판매된 50년 만기 주담대에만 가계부채 증가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앞서 4월부터 2조3000억원 증가세로 돌아선 뒤 5월(4조2000억원), 6월(5조8000억원) 등 이미 증가세를 키우고 있었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부터 은행권을 상대로 ‘포용·상생 금융’을 강조해 왔다. 금리 상승기 소비자 부담 완화를 위해 금리를 낮추고 혜택을 늘리라고 요구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부동산 시장이 꿈틀하자 금융당국은 기조를 바꿔 은행에 대출 문턱을 높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1년도 채 안 돼서 벌어진 태세 전환이다.

물론 당국의 정책 방향은 상황에 맞춰 변할 수 있다. 다만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할 상황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금융당국에 있다면, ‘은행 탓’보다는 자기반성이 우선이다.

[신아일보] 문룡식 기자

moo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