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잼버리, 희망을 보았다
[기자수첩] K-잼버리, 희망을 보았다
  • 이인아 기자
  • 승인 2023.08.1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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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청소년 스카우트 대원들의 축제 ‘2023 새만금 잼버리’가 막을 내렸다. 2019년 미국에 이어 4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이번 잼버리에는 158개국 4만여 명의 스카우트 대원들이 참가했다.

8월1일 전북 부안을 찾은 대원들은 ‘즐거운 놀이’ 잼버리를 꿈꾸며 12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40도에 달하는 폭염에 축제의 장이 돼야 할 새만금 일대가 불모지로 변하며 이들의 부푼 품도 이내 녹아내렸다. 땡볕 아래 우두커니 쳐진 텐트만이 “여기에 사람이 있어요”라고 알려줄 뿐, 세계인들이 몰린 축제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휑한 광경이었다. 열사병으로 쓰러진 대원도 속출했다.

이동식 화장실도 부족한 데다 그나마 몇 개 있는 화장실도 변기에 오물이 가득 차 있는 비위생적인 상태였다. 폭염과 열악한 환경에 급기야 영국과 미국은 대회 5일째 조기 철수를 결정했다. 6000여명이 부안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했다. 대회 중반 “더는 못 버티겠다”며 조기 철수하는 나라가 생기면서 잼버리를 중단해야 하는지를 검토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여기에 일본을 지나는 태풍 ‘카눈’이 방향을 틀어 한반도로 북상하고 있다는 예보까지 뜨면서 궁지에 몰렸다. 이번에는 텐트가 날아갈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코로나에 성추행 논란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세계인들은 한국의 매력을 더 알고 싶어 했다. 악재에도 각국 대표단들이 대회를 완주하겠다고 밝히면서 좌충우돌 논란은 일단락됐다. 각국의 잔류 결정과 정부·기업·지자체의 물량 공세로 대회는 후반기 완벽하게 변모했다.

볼 것 없는 대회에서 흥겨운 잔치로 이미지를 바꿔나갔다. 대원들도 위기를 딛고 이겨내려는 한국의 모습에 호응했다. 준비가 부족했다는 실토에 격려를 보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대회 마지막 날 밤 서울 복판에서 펼쳐진 ‘K팝 콘서트’에서 세계 청소년들은 하나가 되어 희망을 외쳤다. 말 많았던 시간도 소중한 추억이 됐다.

미흡한 운영에 쓴소리가 나왔지만 가장 씁쓸했던 건 그 와중에도 서로 ‘네 탓’만 하는 기성세대들의 공방이 아니었나 싶다. 잼버리라는 대회가 생소하고 청소년들이 참여하다 보니 주최 측에서 중요성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한 건 맞는듯하다. 보는 눈이 많으니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 없다면 차선책을 찾아 어떻게든 구색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국민과 기업들, 정부도 그것에 힘을 다했다.

남 탓은 대회가 끝나고 해도 늦지 않았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적 대회에 가장 초를 친 건 다름 아닌 한국인이었다. 위기를 극복하기보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세력, 그것을 부추기는 자들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지난 도쿄올림픽 때도 그러했다. 4년에 한 번쯤은 모두가 뭉쳐볼 수는 없는 것일까.

이번 대회의 뒷정리는 결국 서울에서 이뤄졌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관광객을 모으고자 지자체가 갖가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게 이번 대회에서 증명됐다.

대회 준비를 위해 투입된 수백억 원의 행방은 반드시 쫓아야 할 것이다. 돈이 없어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핑계도 거둬야 할 테다. 32년 전 고성 잼버리의 성공은 막대한 예산 때문은 아니었다.

이번 대회를 구한 건 세계 청소년 대원들과 K팝이다. 젊은이들의 심성과 열정이 빛난 대회다. 야영을 대신해 각 시도가 제공한 여러 문화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며 한국을 추켜세웠다. 대회 성패에 대한 불안감을 기대로 바꾸는 모습이었다. 축제의 장, 아울러 이번 대회가 어른들의 이기심과 위선에 일침을 놓은 계기가 됐길 바란다.

[신아일보] 이인아 기자

inah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