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각자도생 시대’ 필요한 건 ‘정(情)’
[기자수첩] ‘각자도생 시대’ 필요한 건 ‘정(情)’
  • 이승구 기자
  • 승인 2023.08.10 12: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과 성남시 분당 서현역 인근 등 도심 한가운데에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국민들이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특히 이들 사건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밀집지역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들이어서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또한 해당 사건들이 발생한 뒤로 소셜미디어(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묻지마 칼부림과 비슷한 사건을 저지르겠다는 이른바 ‘살인 예고글’이 속속 올라와 공포를 더욱 키웠다. 경찰 조사 결과 일부 글은 장난삼아 올린 것이라는 게 밝혀졌지만, 국민들의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호신용품을 검색하거나 구매하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고, 호신술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는 치안에 대한 불안감 속에 범죄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자구책을 찾는 것이다. 

사실 호신용품이나 호신술에 대한 관심은 묻지마 흉기 난동의 위협에 직접 맞서겠다는 취지보다는 심리적 안정을 얻고 싶은 생각이 더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평소 출퇴근이나 등하교, 심지어 집 앞에 자주 가던 편의점을 가는데도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모르는 묻지마 칼부림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에 의지해야 살 수 있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에 경찰은 서울 강남역 등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특별치안활동에 들어가는 등 ‘묻지마 범죄’에 대한 총력 대응에 나섰다. 심지어 해외에서 테러가 발생할 때 보이던 경찰특공대와 장갑차까지 도심 한가운데에 배치하는가 하면 흉기 난동 범죄 제압 시 총기 사용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경찰도 이번 사건들의 심각성을 깊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경찰의 ‘오버스러운’ 대응으로 인해 상당수 시민들은 공포감만 커진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장갑차가 있다고 묻지마 칼부림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평소에 자주 보이지 않던 경찰의 행보가 불안감을 더욱 키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이런 조치에도 묻지마 칼부림 같은 강력 범죄가 언제 어디서 사건이 일어날지 파악하고 대비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런 공권력의 강화 등이 범죄를 예방할 수 없기 때문에 범죄를 근본적으로 막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사건들이 빈곤이나 사회 구조적 문제 등으로 인한 분노가 쌓이면서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부가 소외된 빈곤층과 취약층에 대한 정책을 통해 이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만이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전과는 달리 사람들 사이에서 이른바 ‘정(情)’이라고 불리는 따뜻한 마음이 사라진 각박한 사회 분위기도 이 같은 범죄가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도 나온다. 

누군가는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결국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보살피는 것만이 이런 범죄를 근본적으로 막고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digitaleg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