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묻지마 칼부림’ 테러, 특별 치안대책 서둘러야
[기고] ‘묻지마 칼부림’ 테러, 특별 치안대책 서둘러야
  • 신아일보
  • 승인 2023.08.0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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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지난 7월21일 오후 2시7분쯤 서울 지하철 신림역 4번 출구 인근에서 흉기 난동을 부려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기도 성남 분당 서현역의 한 백화점에서 또다시 불특정 다수 일반 시민을 상대로 살상을 저지르는 ‘묻지 마 흉기 난동’ 범죄가 속출하면서 국민 불안이 더 심각해졌다.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와 시간대에 특별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저지른 충격적인 범죄다. 특히 신림역 사건 이후 ‘모방범죄’ 예고가 잇따른 가운데 실제 현실화된 사건이라 시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크고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선진국 가운데서도 치안만큼은 좋기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소문난 우리나라가 어쩌다 시민의 일상이 불안한 공포사회가 됐는지 몹시 안타깝다.

지난 8월3일 경기 성남 서현역 일대에서 20대 남성이 차량을 몰고 인도로 돌진한 뒤, 쇼핑몰로 들어가 사람들을 흉기로 찔렀다. 13명이 부상을 입고 2명은 뇌사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중태다. 이어 8월4일 오전 10시3분쯤엔 대전 대덕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20대 남성이 휘두른 칼에 찔려 중태에 빠졌고, 같은 날 오전 10시39분쯤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인근에서도 흉기를 들고 다니던 20대 남성이 체포됐다. 지난달 신림동에서 발생한 ‘묻지마 칼부림’으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에 이어 연달아 전대미문의 ‘칼부림 유행’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비슷한 살인 예고 글만 온라인에서 하루 새 15건이 올라왔다고 한다. 치안 대책 등이 발표되고 있으나 국민들은 ‘불안’ 넘어 ‘공황’에 빠지면서 전국이 패닉(Panic)에 치를 떨고 있다.

이렇듯 국내 치안에 구멍이 생기자 경찰은 사상 유례없는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8월4일 오후 긴급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국민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흉악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한다.”라며 “흉기소지 의심자와 이상 행동자에 대해 법적 절차에 따라 선별적으로 검문검색 하겠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 조치에 따라 검문검색 인력을 늘려 흉기 난동 등 흉악범죄 예방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으로 시의 적절했다. 이에 뒤질새라 법무부도 ‘묻지마 범죄’ 예방책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공식화했다. 법무부는 같은 날 “흉악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을 위해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형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치안과 형사적인 대책을 다각도로 검토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무작위로 발생하는 범죄를 사전에 완전히 차단하는 치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포가 확산되는 것도 경찰력만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각계 각층의 행정기관과 민간기관들도 힘을 합치는 비상대책이 강구돼 총력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공권력의 물리적 대응과 형사처벌 강화만으로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묻지마 범죄(이상동기 범죄)’를 막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범죄의 배후에 숨어있는 ‘사회적 원인’도 살펴봐야 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겪는 실패와 좌절, 그로 인한 사회적 박탈감 등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적대감으로 발현되는 것이 ‘묻지마 범죄’의 특성이다. 단순한 ‘현상’뿐 아니라 ‘원인’에 대한 대책 마련에도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신림동 사건 용의자는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라는 분노형 범죄였고, 서현역 사건의 용의자는 피해망상을 보였으며, ‘분열적 성격 장애’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다. 교사 습격 사건은 과거 사제 간으로 원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우리 사회 구성 곳곳의 건강이 심각하게 무너졌음을 방증(傍證)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전망을 강화하고, 이들의 사회 적응을 돕는 대책이 필요하다. 공권력의 강경한 대응을 넘어서는 다각도·다층적 예방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경제적·사회적 위화감과 적대감이 커가는 양극화(兩極化 │ Polarization)의 심화와 승자독식(勝者獨食 │ Winner-take-all) 사회시스템의 고착화,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 패자들이 배제되는 교육환경 등 우리 사회 전반을 반추하고 뒤돌아봐야 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하부에 속하는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적절한 인성교육을 받지 못하고 또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인생은 한방이라며 더는 잃을 게 없다는 모토 하에 범죄의 길로 빠지기도 한다. 특히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내용의 보도를 지난 7월27일(현지 시각) 기록적 폭염과 이상기후,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세계 각국에서 정세불안과 폭동, 사회불안이 급증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기해 눈길을 끈다. 영국의 위기관리 컨설팅 업체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는 올해 3분기 글로벌 사회불안 지수가 2017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업체의 히메나 블랑코 수석 분석가는 폭염과 생활비 상승을 가장 큰 이유로 꼽으면서 “높은 식료품 가격 상승률이 특히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정신건강을 체크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우선 여러 사건의 개별적, 구조적 원인을 파헤쳐 우리 사회 어느 부분이 병들어 있는지 정확한 진단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명한 독일의 사회학자 율리히 백(Ulrich Beck)은 “현대사회는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위험은 단순한 재앙이 아닌 예견된 잠재적 위험으로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 산업화 등에 주로 기인한다”고 경고했다. 그러한 잠재적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는 “우리가 어느 날 마주친 재난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지난 시간의 보복이다”라고 말했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사회는 경제발전도 국민행복도 사상누각에 그칠 뿐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면 국가가 시민의 정신건강을 위해 충분히 투자하고, 양극화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는 게 최선이다. 엄벌주의에만 의존해서는 모방범죄를 잠깐 막는 데 그칠 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약자를 돌보지 않는 사회가 치르는 값비싼 대가를 극명히 보여주는 작금의 ‘묻지마 범죄(이상동기 범죄)’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 투자전문가 나심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그의 저서‘블랙스완(Black Swan:위험 가득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에서 역설한 검은 백조를 찾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민의 안전한 일상을 보장하기 위한 범정부적인 종합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선택과 책임의 불균형이 가져올 위험한 미래에 대한 경고)’이라는 책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을 설명하면서 사람을 책임지지 않는 사람, 책임지는 사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권한에 책임이 동반하는 사회가 그립다. 포커 게임에서 딜러 앞에 ‘손잡이가 수사슴뿔로 된 칼(Buckhorn knife)’을 놓았던 데서 유래한 “The buck stops here!(직역 : 수사슴은 여기서 멈춘다 │ 의역 : 최종 책임은 내가 진다)”에 많은 생각이 머문다. 
일상이 된 ‘묻지마 칼부림’ 테러, 모방범죄를 막고 예방할 비상한 ‘특별 치안대책’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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