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식언(食言)
[기자수첩] 식언(食言)
  • 배태호 기자
  • 승인 2023.03.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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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언(食言)이라는 말은 중국 고대 기록 '서경(書經)'의 탕서(湯誓) 편에서 처음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 폭정을 이어가자 이를 보다 못한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군사를 모아 정벌에 나섰다. 

탕왕은 출정에 앞서 군사들에게 도탄에 빠진 하나라 백성을 구하기 위해 정벌에 나선다며 출정의 변을 밝히고, "공을 세운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릴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짐불식언, 朕不食言)"라며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현재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라는 의미의 '식언(食言)'이다.

지난해 취임 당시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행보가 연일 화제다.

최근에는 "이복현 원장이 다녀가면 은행들이 서민금융 대책을 내놓는다"라며 코로나19 이후 휘청이는 서민경제 해결사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실제 이복현 원장이 우리은행 영등포 시니어 플러스 영업점을 방문한 3월30일 우리은행은 고령층을 위한 특화 채널 지속 확대와 함께 가계대출 전 상품의 금리를 최대 0.7%포인트(p) 인하한다는 내용의 상생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이 원장은 3월24일 신한은행, 3월9일 국민은행, 2월23일 하나은행도 찾았다. 

신한은행은 주택담보대출 금리 0.4%p 인하·전세자금대출 0.3%p 인하 등 1000억원 상당의 이자 경감을, 하나은행은 서민금융상품의 신규 취급 금리 최대 1%p 인하를, 그리고 국민은행도 신용대출을 포함한 전 가계대출 상품 금리를 최대 0.5%p 낮춘다고 발표했다. 

은행들이 이복현 원장이 방문했다고 부러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현장 방문과 함께 대책이 나온 만큼 부지런히 소통하는 이복현 원장은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이런 행보를 내년 총선과 연결하는 시선과 목소리가 있는 점은 유감이다.

물론 이런 시선과 목소리가 이복현 개인이 아닌 우리 경제를 둘러싼 상황이 녹록하지 않은데 금융감독당국 수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중도 사퇴할 때 생기는 우려 때문인 것은 안다. 

하지만 이복현 원장은 취임 뒤 줄곧 현장을 찾으며 금융권과 소통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광폭 행보'를 깎아내리며 기운을 뺄 이유나 필요는 전혀 없다. 

또 이복현 원장 자신도 "금감원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열심히 일하겠다"며 출마설에 분명하게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런 만큼 이제 이복현 원장의 분주한 발걸음을 곡해해서는 안 된다.

삶의 반평생 이상을 법과 원칙을 수호하며 살아온 그가 '식언(食言)'이나 하는 인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bth77@shinailbo.co.kr